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때의 시원함과 뿌듯함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다. 세상사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되새겨보는 세상 일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냐?
여기는 자족(自足)이라는 나만의 왕국이다. 비록 옛 양가(楊家)들 마냥 에고이스트라는 핀잔을 들을지언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숨어서 스스로의 만족에 기꺼워하는 지금이 좋아라.
지금 맘 같으면 도연명처럼 사표를 던지고 애진(愛塵)의 세상과는 아듀하고 싶어라. 사는 것이 별 것이더냐. 그저 내 멋에 사는 것을.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가게 두고, 나는 이 길을 더 들어가고 싶어라.
여기라고 어찌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랴? 그러나 단순하다. 마음의 평화는 단순함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변화도 선택의 여지도 적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일 또한 거의 없다. 적은 생각, 간소한 삶을 여기서 비슷하게나마 한 번 닮아보려 한다.
그러나 빛에는 늘 그림자가 있는 법, 가끔씩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는 날 두렵게 하여라. 물에 취약한 터여서 요즈음처럼 한꺼번에 폭우가 되어내리는 비는 내 간을 콩알만하게 만든다. 집 뒤에도 마음이 쓰이고, 또 마을과 마찰이생기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주변이 완전히 정리되기 전까지는 이런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버리고 비울 때 평화는 찾아오리라. 이곳이 또 다른 애착의 터가 된다면 고요는 깨지고 번거로움에 시달리리라. 그래서 쉼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기뻐하면서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