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건축일지

샌. 2005. 8. 4. 08:05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은 5천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다.


처음 생각은 집은 작고 단순하며 가능하면 친환경적으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작고 아담한 흙집이었다. 한 때는 내가 직접 지을 계획까지 짜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지을 생각을 하니 부딪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업체에 의뢰하면 건축비가 예상 외로 많이 들었고, 직접 짓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많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충고한 상주하지 않을 때의 관리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벽돌집과 조립식 둘이었다. 마지막까지 둘 사이에서 망설였는데 결국은 조적조로 결정이 났다. 내 마음 속에는 담쟁이덩굴로 덮힌 빨간 벽돌집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이웃에서 지은 조적조 집 때문이었다. 건축을 믿고 맡길 미더운 시공업자를 찾고 있었는데 공사 과정과 마무리를 보면서 신뢰가 생겼다.


2002년 7월, 여주종합건재에 들러 건축 상담을 했다. 집 구조는 조적조, 크기는 30평 정도로 하고 건축 일체를 업자에 맡길 때 소요 경비는 5천~6천 정도로 예상되었다. 7월 20일에 대지로 형질 변경시키기 위한 측량을 하고, 진입로 포함해서 70평을 전용했다.


이때부터 약 8개월간 수없이 집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했다. 한 때 방 둘짜리의 작은 집도 생각했으나 건축비가 대동소이하여 포기하였다. 집의 외양은 결정이 되었으나 방 3, 거실, 화장실, 다용실을 어떤 크기로 어떻게 배치하느냐로 생각이 수도 없이 변했다. 그리고 집의 배치도 처음에는 남향만 당연시하다가 나중에는 모양과 전망을 우선해서 서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집의 모양은 어느 잡지에 나온 이 그림이 모델이 되었다.

 



직접 그린 설계도를 벽에 붙여놓고 수없이 수정을 반복했다.

 



해가 바뀐 2003년 2월에 건축을 위한 경계측량을 하고 3월이 되어서야 최종 도면이 나왔다. 그러나 견적서에 나온 건축비가 6천이나 되어(가구나 뒷정리까지 고려하면 7천까지 예상) 예산 관계로 다시 작은 집으로 바꾸었으나 23평의 견적이 5천 3백이 나와서 무리가 되더라도 30평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4월 9일에 터잡기를 시작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상태였다. 뒷산이 평판이 좋지 않은 양봉업자에게 팔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걱정되는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경험해 보는 집짓기에 대한, 그리고 주변 상황의 악화에 따른 불안감이 자꾸 커져갔다.

 

4월 22일, 집이 들어설 기초 윤곽이 드러났다.

 



이곳 집터의 단점은 물이 많다는 것이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터의 좌우로 흘러가는데 산과 접한 쪽은 항상 습기로 축축하다. 땅을 파보니 금방 물이 배어 나왔다. 공사하는 분은 괜찮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5월 4일부터 12일까지 벽돌 쌓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해에는 특히 상실의 고통으로 아파하고 있을 때였다. 또 본가에서는 형제들과의 마찰이 심했고, 차가에서는 장인어른이 항암 치료로 입원을 반복하시던 상태였다. 그 와중에 집을 짓고 있었으니 별로 신나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건축업자가 말썽을 부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뒷산은 걱정했던 대로 황폐화되었다. 나무들은 베어져 나가고 산의 드러난 속살이 처참했다. 집 뒤의 환경 악화와 함께 비만 오면 쏟아져 내리는 토사가 골칫거리로 되었다.

 


 

6월이 되니 집은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었다. 그동안 내부 구조에서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다용도실을 크게 하기 위해 보일러를 밖으로 빼고, 창문의 크기도 변경되었다. 창문을 너무 크게 만들어서 자꾸 줄여야만 했다.

 




6월 14일, 읍내에 나가서 화장실 용품들을 사고, 싱크대 상담을 했다. 싱크대는 아내가 가장 신경을 썼다. 묘하게도 고향집에서도 동시에 집수리가 시작되었다. 주로 내장 공사를 했다.

 


6월 21일, 앞면에 인조석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6월 29일, 지붕에 싱글을 입혔다.

 


 

7월에 들면서 집 주변 정리 작업을 했다. 흙을 들여와 마당을 고르고, 조경석으로 집 단장을 했다.

 

7월 12일, 보일러를 가동했고, 최종 공사비는 6천만 원이 조금 넘게 나왔다. 처음 예상과 거의 비슷하게 된 셈이다. 중간에 큰 변화가 없었고, 고급자재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초과된 돈 때문에 서울에서 전셋집을 얻는데 애를 먹었다.

 


 

7월 19일, 싱크대가 설치되고 새 집에서 첫 밤을 보냈다.

 


 

7월 25일, 커튼을 달았다. 장인, 장모님이 오셔서 새 집의 첫 손님이 되셨다. 장인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가 되실 줄은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8월에는 흙과 자갈을 들여와 마당을 정리했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오는 수로 문제로 동네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동네에서 진입로를 막아버려 한 달간 집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중순부터 가족과 같이 잔디를 심었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집 하나를 지었다. 집 건축 자체보다는 주변 상황이 훨씬 더 힘들게 했다. 그것 때문에 한숨과 눈물이 늘 따랐다. 또 이 집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과 고개를 돌리는 형편이 되었다. 그때의 오해는 아직까지도 응어리가 져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지만 배운 것 또한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수월하게 내 뜻대로만 진행하지 않는 법이다.


주말에만 내려와서 한 번씩 보는 정도로 시공 일체를 업자에게 믿고 맡겼다. 그래도 큰 하자 없이 집이 완성되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건축 과정에서 이웃에 피해를 준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좀 더 사려 깊고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런 오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지금은 이곳을 내 꿈의 한 징검다리라 생각하고 있다. 분명 뒷날의 어느 시기에 그래도 이때가 아름다웠었다고 말할 것이다. 꿈을 꾸고 그것을 시도하는 것은 성공 여부를 떠나서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 공사비 내역 (단위; 천원)


4/9 105 (목재, 못, 실, 락카)

4/101080 (철근1.5t)

4/11 920 (레미콘, 펌프카)

4/12 105 (벽돌, 결속선, 목재, 못)

4/141416 (레미콘, 펌프카)

4/17 154 (후레타이, 웨치핀)

4/181724 (레미콘, 펌프카, 반생, 파이프후크)

4/243266 (철근1t, 정화조, 스링바, 작업선, 편사호수)

4/27 103 (벽돌, 비닐, 결속선, 스페샤, 못, 반생)

4/281788 (레미콘, 펌프카)

5/32009 (적벽돌5500, 모래, 시멘트, 스티로폴, 비닐, 물통, 테이프)

5/5 480 (벽돌9600)

5/62540 (포크레인, 벽돌9600, 거푸집임대료)

5/62000 (목수인건비)

5/9 397 (목재, 스티로폴)

5/10 240 (벽돌4800)

5/12 430 (벽돌4800, 모래, 시멘트)

5/13 60 (벽돌1200)

5/143120 (조적인건비)

5/16 295 (못, 목재, 합판, 반생)

5/18 394 (합판, 목재, 빠루)

5/19 16 (못)

5/192600 (목수인건비)

5/20 132 (목재, 못, 스치로플)

5/221598 (못, 목재, 반생, 결속선, 스페샤, 철근1.5t)

5/232160 (레미콘, 펌프카)

6/2 357 (시멘트, 모래, 방수원액)

6/4 30 (몰다인)

6/9 395 (모래, 시멘트)

6/103000 (유리 및 샷시대금)

6/11 905 (벽돌500, 스치로플, 몰다인, 메도몰, 못, 가꾸대, 석고, 목재, F30, 나무타카)

6/12 137 (콘타카, 데코판, 합판, 절단공임, 석고)

6/122200 (문짝대금)

6/13 730 (조적인건비)

6/14 101 (우레탄폼, 걸래밭이, 콘타카)

6/16 664 (vg2, XL, y메쉬, 스치로플, 못, 결속선, 본드, 아트론카바)

6/17 53 (방수액, 메지부, 실)

6/18 370 (모래, 시멘트)

6/20 285 (c, 발수제, 도끼다시자갈)

6/203000 (미장인건비)

6/212000 (목수인건비)

6/231200 (메지, 도끼다시, 타일인건비)

6/232800 (유리 및 샷시대금)

6/241095 (타일, 흙)

6/27 580 (기름보일러외)

7/1 173 (벤츄레이터, XL, vg2, 본드, 아트론카바, 부동전, 수도가랑, 스폰지)

7/24023 (싱글 및 선홈통, 빗물받이, 위생도기)

7/33440 (인조석, 페인트)

7/4 627 (충주석, vg2)

7/5 558 (충주석)

7/6 101 (보온덮개, 칼날)

7/8 760 (뒷정리장비)

7/8 140 (잡부인건비)

7/122400 (전기, 설비인건비)

7/12 500 (등기구)


총액 61,722,8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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