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 몇 가지의 기계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휴대폰을 장만해서 이젠 늘 이놈이 옆에 따라 다닙니다. 심심해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슨 소식이 없나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놈에게 콜라를 엎어버려서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걸 수리하느라 원주를 하루 내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그것에 마음 앗김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 묵직한 카메라 가방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산 카메라를 묵히기도 그렇고 어디에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닙니다. 놓고 가면 아쉽고 또 누가 들고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가지고 다니면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무겁기만 하고, 어떨 때는 애물단지가 딴게 아닙니다.
이래서 또 하나 제 마음을 앗아가는 기계입니다. 물론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주는 기쁨을 주는 반대급부가 있어서 산 것이지만 말입니다.
작년까지는 잔디를 일일이 낫으로 깎았습니다. 워낙 낫질이 서툴다 보니 거의 일주일 가량 걸립니다. 그래도 그 단순작업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명상 비슷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그렇게 잔디 작업을 반 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옆집에서 예초기를 사서 한 순간에 잔디를 말끔히 깎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변했습니다. 저도 예초기를 샀습니다. 기계 만지기를 두려워하는 터라 망설이기도 했지만 무슨 마가 끼었는지 쉽게 결정해 버렸습니다. 이틀 정도 해야 할 일이 30분에 끝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왠지 허전했습니다.
장자(莊子)에 보면 기심(機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계가 편리한 줄 알지만 그 기계에 지나치게 의지하게 되면 사람의타고난 본성을 앗기게 된다는 경고가 그 말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할 수 없는 세찬 물결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동료의 차를 탔다가 GPS인가 뭔가하는 장치를 보았습니다. 커브길도 경고해 주고, 전방에 있는 과속기도 알려주고, 모르는 길도 찾아주고, 위성인가 뭔가를 이용한다는 그 정밀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운전자가 하는 기능의 많은 부분을, 아니 사람의 능력 이상의 것을 이 기계가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기계에 익숙해진다면 사람의 많은 능력이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미 자가용 시대가 되면서 사람 다리의 기능은 많이 퇴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더 미래가 되면 과연 사람은 어디까지 운전을 하게 될까요? 자신의 차에 타고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차가 알아서 데려다 줄 것 같습니다. 그때에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한때 책도 없애고, 전자기기도 없애고,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처럼 반문명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저도 문명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 한가운데는 언젠가 다시 휴대폰도 버리고, 카메라도 버리고, 예초기도 버리고 그래서 다시 낫을 잡고 풀을 베며 살게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계가 넘치는 멋진 신세계 보다는 저는 아직 인간의 몸이 더 중요시되는 미개한 세상이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