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악마의 구름

샌. 2005. 8. 4. 08:11

언젠가 우체국에서 겪은 일이다.

우체국 창구에는 고객들에게 주려고 사탕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한 젊은 아가씨가 직원에게 이 사탕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래, 먹어도 되는 거야.”하고 직원에 앞서 말을 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의아한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으니 화가 난 아가씨가 “왜 반말을 하는 거예요?”하면서 따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녀 같은 나이인데 반말하면 어떠냐고 하고,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반말을 하느냐며 대들었다. 나중에는 서로 반말에 험한 욕까지 나오는 싸움판으로 변해 버렸다.


요사이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 같이 화가 나 있고, 작은 자극에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또한 하나 같이 무표정하고 돌처럼 딱딱하다. 지하철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어떨 때는 기묘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중병에 걸려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세상이 피곤하고 살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처방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움직여나가는 근본적인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교육문제나 부동산문제 같은 것이 지금과 같은 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말든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욕망이 넘쳐나고, 그것을 부추기고 권장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교육문제, 부동산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가진 자는 더 못 가져서 불만이고, 없는 자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으로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모든 가치관이 자본 하나로 단일화 되어 버렸다. 학력이고 권력이고 모두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다. 부와 권력이 인간을 결코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개인이나 국가나 그 목표가 오직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무한 욕망에 사로잡힐 때 인간 행복의 조건은 파괴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는 무한경쟁의 끔찍한 훈련소로 변하고, 경제성장과 개발주의로 국토가 절단 나도, 국가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제성장 수치가 올라가면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인식하는 국민 의식이 있는 한 나라의 앞길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의 기득권자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거짓 환상을 심어주고, 자신들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나오는 이득을 몽땅 챙겨간다.


요사이 X-file로 세상에 일부가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 상층부에 존재하는 검고 추악한 커넥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정치가 무엇이고, 경제가 무엇인지 그 돌아가는 내막을 잘 알지 못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간다는 소위 지배계급에게서 한 조각 인간적 품위마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은 나라가 어디로 가건 말건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에게서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인격적 품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나무라랴? 우리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안다. 잘못된 사회적 구조 속에서 “노!”라고 얘기 할 철학과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모두 작은 그들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각자의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우리 대부분은 자본숭배자들이고, 음모주의자들이고, 폭력주의자들이다.


최근에 읽은 글의 한 구절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자존심으로 산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거나, 아니면 내 밖에서 주어지는 어떤 가치에서 비롯된다. 오직 그런 가치를 붙들고 사는 한에서만 우리는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고, 야수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인간적 품위요, 얻은 것은 진실한 삶에 대한 냉소주의다. 우리는 삶을 향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삶의 가장 여유로운 순간들마저도 전쟁 치르듯 숨가쁘게 보낸다. 여가도 숙제하듯 품위 없게 즐기고, 예술도 품위 없게 소비한다. 도시의 시커먼 하늘일망정 새들은 그래도 품위 있게 날아오를 줄 안다. 그렇건만, 그 밑의 인간군상은 품위 없이 벌고, 품위 없이 소비한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품위 없음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품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서 이긴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품위는 ‘스스로 말미암는’데서, ‘스스로 하는’데서 생긴다. 그래서 스스로 자라 스스로 꽃피우고 사라져가는 들꽃들에게 품위가 있다. 총칼로 위협한다고 들꽃은 피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들꽃은 핀다. 이런 것이 ‘품위’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래도 품위를 지키며 살려고 애썼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그런 말은 이제 사전 속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가?‘


개인을 탓하기 이전에 지금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검은 악마의 구름을 보아야 한다. 구름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감싸 질식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저 검은 구름이 구원을 가져다줄 줄 믿고 버려서는 안 될 것까지 제물로 갖다 바치며 환호하는 광신도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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