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배추와 호박

샌. 2005. 8. 28. 20:29


 

열흘 전에 감자를 캐낸 자리에 읍에서 사온 배추 모종 100 포기를 심었습니다. 그것이 이만큼 예쁘게 자랐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배추가 잘 자랐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 줍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던 도시 사람이 하는 노릇 치고는 그래도 봐줄 만 하다고 하는 뜻임을 압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설프게 심었던 작년에도 그런대로 배추는 잘 되었습니다. 이웃에서는 약을 쳐도 벌레가 먹는다는데, 우리는 약 한 번 치지 않았으면서 별로 흠집 없는 배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서 와서 보고 이 집은 물도 안 주고, 약도 안 치는데 어떻게 배추가 이렇게 잘 자랐느냐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들여온산흙에서 키워서 병충해의 침입을 덜 받았지 않았나 하고 추측을 해 봅니다. 그때 수확한 배추로 담근 김치를 아직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오늘은 옆 집에서 배추 모종을 주어서 60여 포기를 또 추가로 심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린 건가요? 그러나 수확이 잘 되면 아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겠습니다. 여유가 있으니 벌레가 좀 뜯어먹는다고 해도 인간의 몫은 돌아오겠지요.

 

여러 가지를 심고 가꾸고 있지만 생명이 자라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녹색 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명 의지의 에너지가 폭발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눈에 띌까 말까 한 배추씨가 땅에 들어가 싹을 틔우고 저렇게 초록의 잎을 흔드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입니다. 신기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마당 한 켠에서는 호박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잎만 무성했지 호박이 조금밖에 열려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어쩌다 살아남아 지금은 이놈이 유일하게 가을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젠 저녁이면 창문을 닫아야 할만큼 공기가 차졌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새 계절을 맞으며 나는 얼마큼 잘 익어가고 있는지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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