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새들은 모이를 외면한다

샌. 2005. 9. 3. 09:29

마당과 밭에는 가끔씩 새들이 찾아옵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자주 볼 수 있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에서 들리는 맑은 새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찾아오는 새는 대개 딱새와 박새, 산비둘기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는데 요사이는 참새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리로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합니다.


오래된 쌀이 한 되 정도 남은게 있었는데 쌀벌레가 생기고 바게미(?)라고 부르는 날벌레들도 자꾸 생겨서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새들의 모이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 가운데 있는 나무토막 위에다 쌀을 뿌려놓아 봤습니다. 이놈들이 떼로 몰려와 기꺼이 모이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새들은 내가 준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혹시 사람이 없을 때 먹지 않나 싶어 유심히 관찰해 보지만 쌀의 양은 며칠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쌀이 갈색으로 변색되어 벌써 몇 번인가 새로 갈아주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들이 아직 먹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모이를 주는 방법이 잘못 되었나요? 요즈음은 배가 불러서 그런 것 쯤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먹지 못하는 걸 갖다놓고 인심 쓰는 척 한다고 기분 나빠서 쳐다보지 않는 것일까요?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역시 새들의 인간에 대한 경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들이야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은 자연스레 구별할 줄 알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위험성이 있는 대상에는 본능적으로 접근하지 않겠지요. 그것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인간이 동물을 잡기 위해 쓴 사기와 기만술에 대한 생존 본능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반응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선의의 행동조차 새들은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언젠가 설악산에 갔을 때 주전골 들어가는 길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절의 뜰에 서 있는 스님의 손에 모이가 들려있었는데 산에 있는 새가 날아와서 모이를 쪼아 먹고 날아가는 모습을 경탄하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새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적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런 관계가 되자면 도대체 얼마만한 긴 시간동안 새와 사람 사이에 신뢰가 쌓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어떤 새는 그래도 경계만 하면서 먹이를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와 인간과의 신뢰 회복은 참으로 멀 것 같습니다.


마당에 뿌려놓았으나 새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쌀알들을 보면 슬픈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업보일 것입니다. 어제는 새들을 잡으려고 모이로 유혹했다가 오늘은 선심을 베풀려 하니 새들이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엔 새들의 마음을 너무 쉬이 얻으려는 제 자신의 조급한 욕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새들이 마음 놓고 찾아와 제 마음을 먹어주는 날을 꿈꾸며 모이 주는 일은 계속하겠습니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0) 2005.09.27
땅의 옹호  (0) 2005.09.22
배추와 호박  (0) 2005.08.28
서러운 날  (2) 2005.08.23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0) 200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