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예초기로 잔디를 깎으며

샌. 2005. 9. 27. 15:12

지난달에 예초기를 샀습니다. 잔디를 깎기 위해서입니다. 집 주변에 심어놓은 잔디가 넓지도 않은데 낫으로 깎자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립니다. 지난 초여름에는 일주일이 걸려도 다 깎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작업이 서툰 탓입니다.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힘들지만 그럭저럭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예초기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것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낫으로 깎는 것에 비하면 순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쉽고 빨리 일이 끝났습니다. 그분은 미련하게 살지 말라며 예초기를 사서 쓸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로 작동되는 신형 예초기를 산 것입니다.


저는 기계치(機械痴)라고 할 정도로 기계나 도구를 만지는데 서투릅니다. 어쩌다 기계를 다루게 되면 꼭 무슨 사고를 칩니다. 그래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예초기를 처음 만질 때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수월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예초기라는 기계가 보기보다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더군요. 요령만 터득하고 조심하면 다루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기계는 사람의 육체노동에 비해서 수십 배, 아니 수천 배의 효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초기를 사용하면 그 많던 일이 하루도 안돼 끝나니까요. 역시 기계는 다르구나하는 고마움이 절로 생깁니다.


그러나 칼날이 어디에 잘못 부딪치지나 않을까 바짝 긴장해야 되고, 찢어질듯 울어대는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견뎌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심하게 떨리는 대를 잡고 있느라 왼손 관절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저려오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기계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직접적인 접촉이 아니라 기계를 매개로 해서의 만남입니다. 기계는 ‘너-나’의 관계를 ‘그것’의 관계로 격하시킵니다.

 

낫으로 잔디를 깎을 때는 지렁이가 나오면 다른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작은 개구리가 잔디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을 보며 미소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계는 저돌적이며 냉정합니다. 풀뿐만 아니라 지렁이도 개구리도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자신의 손에 피가 묻지 않았으니 대상에 대해 윤리적 책임감은 덜 느낍니다. 기계는 확실히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차갑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것이 현대문명의 특징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문명은 인간을 사이보그의 단계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완전무장을 하고 예초기를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며 기계인간이라고 부른들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손은 이미 여러 가지 기계들과 접속되어 있습니다. 시대는 앞으로도 점점 더 인간을 기계에 의존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기계문명은 세찬 탁류가 되어 인간의 땅을 휩쓸고 지나갈 것 같은 어두운 예감이 듭니다.


예초기 덕분에 일은 수월하게 끝냈으나 솔직히 마음은 허전합니다. 그것은 일을 너무나 쉽게 ‘해치운 듯한’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일은 수월하게 끝냈지만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은 줄어들었습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이것을 배부른 자의 넋두리라고 할지 모릅니다. 기계를 반대하면서 예초기를 손에 들고 있는 제 모습이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말과는 달리 앞으로도 예초기를 즐겨 사용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또 타협을 할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기계든 맨손이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따스한 정만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그러나 이것이 한 궁색한 자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자꾸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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