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샌. 2003. 9. 12. 20:5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白石)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오랫동안 `마가리`를 지명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오막살이를 뜻하는 북쪽 방언이라고 한다.
지명이든 아니든 마가리는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이상향으로 되어 있다.
언젠가 여기를 박차고 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손도손 살 수 있는 곳.....

그런 장소를 발견했다고 일을 벌렸는데 지금은 벽에 부딪쳐 있다.
낯 선 곳에 새 집을 지은 뒤부터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밀려오고 있다.
그것은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도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지.
끝은 또 다른 시작의 다른 이름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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