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속에 있다고 좇아 들어 못 봤거늘
허공이 밖에 있대서 찾아 나가 만날 손가
제 안팎 모르는 임자 아릿다운 주인인가
온갖 일에 별별 짓을 다 봐주는 맘이요
모든 것의 가진 꼴을 받아주는 허공인데
아마도 이 두 가지가 하나인 법 싶구먼
제 맘이건 쉽게 알고 못되게 안 쓸 것이
없이 보고 빈탕이라 망발을랑 마를 것이
님께서 나드시는 길 가까움직 하구먼
- 맘과 허공 / 류영모
다석 류영모 선생은 56세 때인 1946년부터 30년 가까이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3천 수 가까운 한시와 시조가 들어있다. 이 시조도 그중 한 편이다. 선생은 공(空)을 만물의 근본이며 존재의 바탕으로 보았다. 이 우주의 참된 실재는 물질이 아니라 공, 즉 빔이다. 마음이 공과 하나되어 공색일여(空色一如)의 자유에 이르는 게 깨달음이다. 부처나 예수는 그런 경지에 이른 분들이시다. 빔이 맘 안에, 맘이 빔 안에 있음을 석가가 깨달았고,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예수가 깨달았다.
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어쩐지 나는 수십 년 전부터 마음을 허공 같다고 생각한다. 허공은 저 위에 있는 것인데 맘을 비우면 허공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마음 그릇을 가지려고 한다면 측량할 수 없이 크게 하라. 우리 맘은 지극히 큰 것으로 우리 맘을 비워 놓으면 하늘나라도 그 속에 들어온다. 우리 마음에 하늘나라(성령)가 들어오지 못하면 맘의 가난을 면치 못한다. 맘과 허공은 하나라고 본다. 저 허공이 내 맘이요, 내 맘이 저 허공이다. 여기 사는 것에 맛을 붙여 좀더 살겠다는 그따위 생각은 말자. 마음과 허공이 하나라고 아는 게 참이다. 빔(허공)에 가야 한다. 맘이 식지 않아 모르지 맘이 식으면 하나된다. 허공이 마음이고, 마음이 허공이라는 자리에 가면 그대로 그거다. 자연(自然)이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절대(絶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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