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정란의 목각

샌. 2013. 6. 23. 09:46

옛날 얘기 하나 해 줄께.


옛날 후한(後漢) 대에 정란(丁蘭)이란 사람이 있었어. 부모를 일찍 여의어 봉양할 수 없는 걸 평생 슬프게 여겼지. 그래서 생각 끝에 나무를 아로새겨 사람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진짜 어머니로 알고 섬기기로 했지. 밤이면 목상한테 가서 정성으로 "어머님 안녕히 주무셔요" 하고, 아침이면 또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하고, 어디 갈 일이 있으면 들어가서 "저 어디 갔다 오겠습니다" 해서 허락하는 기색이 보여야 가고, 근처에서 무슨 물건을 빌리러 오면 "저 아무개가 무엇무엇을 빌리러 왔는데 주랍니까?" 하고 품(稟)해서 허락하는 안색이 나타나 뵈야 빌려주었대.


하루는 근처에 사는 장숙(張叔)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와서 정란의 아내 보고 무슨 물건을 좀 빌려달라 했대. 정란의 아내는 그 목각한테 들어가 품했더니 안색이 좋지 않았으므로 빌려주지 않았어. 그랬더니 장숙의 아내가 목각보고 꿇어앉아 얘기하는 꼴이 보기 사나워 욕을 퍼붓고 작대기로 목각을 두드려 패고 달아났지.


정란이 돌아와서 나무사람이 낯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아내더러 까닭을 물으니 아내는 사실대로 말했어. 정란이 분김에 장숙의 아내를 칼로 찔러 죽였지. 그래 관가에 잡혀가게 되었어. 그 목상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러 들어갔더니 목상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는 거야. 관리가 그것을 보고 정란의 지극한 효성이 신명에까지 통한 것을 놀랍게 여겨 죄를 다스리지 않고,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표창을 했다는 거야.

 

정성이 지극하면 나무나 돌덩이도 신불(神佛)이 되는 거야. 나무만 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뜻을 읽어주면 좋겠어. 절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절 하는 성의가 소중한 거야. 세상 만물은 무언가로 다 연결되어 있어. 마음이 맑고 그 기구(祈求)가 순수하면 목각도 눈물을 흘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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