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착하게 살자

샌. 2013. 7. 17. 11:14

예전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들었다. 책, 영화, 이야기에도 권선징악 내용이 많았다. 학교에 아이를 맡기면서 선생님에게는 때려서라도 인간이 되게 해 주십시요, 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는 강조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제일 목표가 된 것이다. 그래야 좋은 상품이 되고 세상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게 미덕이 못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요사이는 동화에도 착한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착함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진짜 착한 게 뭔지 아이들에게 생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밖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친절을 경계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 기차>에 이런 동화가 나온다.

 

한 부인이 아이 셋을 데리고 기차에 탔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떠들자 부인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착한 아이가 착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이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자 옆에 있던 한 아저씨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옛날에 엄청나게 착한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심하게 착한 소녀는 너무나도 착해서 '말 잘 듣는 상, 공부 잘하는 상, 바른생활 상'으로 메달을 세 개나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굉장히 착하다는 이야기를 그 나라의 왕자도 듣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소녀를 기특하게 여겨 궁전으로 초대하기에 이릅니다. 궁전 정원에 들어간 소녀는 너무 행복합니다. 착하기 때문에 궁전에 초대되었고, 이렇게 멋진 정원에서 신기한 동물들과 나무들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때 늑대가 정원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습니다. 늑대를 본 소녀는 겁에 질려 수풀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소녀는 엄청나게 후회를 하게 되죠. '내가 특별히 착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늑대는 소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그때 소녀가 받은 세 개의 메달이 부딪히며 찰강찰강 소리를 냈습니다. 늑대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발길을 돌려 소녀를 덮치고 말았죠.

 

전통적 얘기였다면 착한 소녀는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소녀는 착하기 때문에 도리어 늑대 먹이가 된다. 그저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착한 건 아니다. 영리하게 착해야 한다는 뜻일까, 이 동화를 들으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착한 상으로 받은 메달이 부딪히며 소리가 나서 늑대에게 발각된다는 비유가 의미심장하다.

 

어깨들이 팔뚝에 한 '차카게 살자'라는 문신이나, 어느 단체에서 나라 곳곳에 세워놓은 '바르게 살자' 돌덩이처럼, '착하게' '바르게'는 이제 엉뚱한 사람들의 구호가 되었다. 어떤 착함이고 어떤 바름인지 그것이 문제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이 '착하게 살자'라고 하는 것은 착한 먹잇감을 찾는 늑대들의 노림수가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 많아져야 제멋대로 세상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착하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착하지만 그저 착하지만 않기, 인간의 탈을 쓴 늑대를 분별하고 경계할 수 있는 착하기, 뭐 이 정도로 말해야 할까?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 착하게 산다면 남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더 이상 자식에게 착해지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착함에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요리하는지 지켜보는 날카로운 눈이 없다면 단순히 착하다는 건 늑대의 먹이가 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착해지겠다는 건 바보로 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구석에는 착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띄지도 않는 그런 바보들에 의해 그나마 이렇게라도 세상이 굴러가지 않나 싶다. 착해도 걱정인 세상, 그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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