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 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 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의 사랑을 하고 말 텐데
- 알몸 사랑 / 문정희
화끈한 사랑의 시인이다. 문정희 시인은 불꽃보다 더 뜨거운 정열의 여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가 원초적 생명력으로 약동한다. 한여름의 태양 아래 풍만한 육체의 건강한 나부를 보는 것 같다. 아름다운 어른은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외친다. 시인에게 시들어가는 나이는 없다. 그런 사랑을 나는 감당할 수 없지만, 시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 피만큼 따뜻한 사람, 내 살만큼 부드러운 사람, 내 뼈만큼 곧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은 강렬하다. 그런 아름다운 어른이 된 다음에는 필생의 사랑이 찾아와도 좋고, 안 찾아온들 아무렇지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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