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책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맛있게 요리를 하느냐에 읽는 재미가 결정된다. 지은이의 손맛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진화에 관한 획기적인 발상이 나오기 어려운 시점에서 발굴된 화석과 자료를 가지고 흥미 있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헤닝 엥겔른(Henning Engeln)이 쓴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는 인간의 기원에서 미래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친절한 설명서다. 따라서 책 역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7백만 년 전에 유인원에서 갈라져서 진화하고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인류 발생사의 마지막 장면은 유전학, 언어학, 고고학의 조사 결과로 이젠 분명해졌다. 25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현생 인류의 신체 골격과 거의 같은 형태의 인간이 존재했고, 12만~15만 년 전에는 완전한 동일한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10만 년 전에 신인은 아프리카를 떠나기 시작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지상에 퍼져 나갔다. 신인은 아마 구인과 전혀 섞이지 않았거나 혹 섞였다 해도 미미한 정도였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졌고, 신인은 번창했다. 그 차이를 어느 과학자가 이렇게 표현한 게 재미있다.
"우리는 미쳤고, 네안데르탈인은 미치지 않았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약 10만 년 전에 신인이 나타났으며, 가장 짧은 시간에 전 세계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보트 하나를 가지고 길을 떠나 항해하면서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한 섬을 찾아가려는 생각이 신인에게 들었다는 것을 보면 분명 그는 미친 게 틀림없다."
넘쳐나는 창의력, 거역할 수 없는 호기심, 그리고 죽음을 무릅쓴 모험심, 이 점이 새로 출현한 신인이 구인과 다른 점이다. 어쩌면 모종의 무분별함도 신인이 갖고 있던 특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신인이 가는 곳마다 동물의 대량 멸종이 있었다. 신인이 세상을 정복했지만 통제하기 힘든 인간 본성이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에 평화가 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다룬 3부다.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기계들이 인간을 지배할까? 과학자들은 궁극의 우주 법칙을 발견할까? 그래서 신에 대한 질문 같은 심오한 문제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을까? 나노테크놀로지는 인간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까? 무척 궁금한 게 많다.
낙관론의 대표 주자는 레이 커즈와일이다. 인간이 과학 기술에 의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도 가능한 신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반대편에 지옥 시나리오도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병원균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나노머신의 무한 자기 복제로 지구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빨아들일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이 기술 발달에 휘둘리지 않고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 가며 번영할 수 있다는 제3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류 미래를 결정할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유전자 조작, 나노기술이다. 인류가 이들 기술을 가지고 더 강한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새로운 종류의 종으로 거듭날 것이다. 유전자가 조작되는 미래에는 자외선을 보고, 박쥐처럼 초음파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심지어 전파로 의사 소통을 하는 인간이 생산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식물처럼 빛을 양분으로 삼을 수도 있고, 화성에서 얼음에서 뒤덮인 북극 지역에서 생존할 수도 있다. 인간은 우주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은하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실버의 예상은 사뭇 밝지만은 않다. 부자들은 자녀의 유전자를 최상으로 만들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는 두 계급의 인간으로 나뉘게 된다. 영화 '엘리시움' 같은 미래다.
인류가 자체 모순과 어리석음으로 파멸하지만 않으면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 될 것이다. 만약 천 년 뒤의 세상을 가볼 수 있다면 지금은 환상이라 부르는 것들이 실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그런 전환기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