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샌. 2014. 11. 17. 11:02

천규석 선생의 글은 강력한 생태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환경 근본주의자로 오해받게 생겼다. 시장과 함께 세금과 국가가 작아져야 하고 궁극에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점에서 선생은 아나키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문명의 병폐가 땜질 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생각할 때 근본을 도려내는 외과수술을 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선생의 비판에는 소위 진보라 불리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다. 한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 제도정치권이나 시민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들 대부분이 선생의 관점에서는 비판과 부정의 대상이다. 이 책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의 제1부 '꼴불견 세상'에서는 구체적으로 김지하, 박원순, 고은, 유홍준, 노무현 등이 거론된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얼마 전에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사실을 왜곡했으며 춘원이 윤색한 것이라는 재야사학자의 발표가 있었다. 그분이 밝힌 김구의 실제 모습은 꽤 충격적이다. 우리가 겉으로 아는 것과 실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위인일수록 그런 불일치는 심하다. 알고 보면 이 세상에는 존경할 사람 별로 없다. 좌파나 우파 다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은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 그러려니 한다. 사람이든 현상이든 근본 자리에서 보도록 노력하면 된다.

 

선생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목주의를 부정한다. 한마디로 유목은 지속 불가능한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유목주의는 반국가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주의로 기울게 한다. 고대 국가의 출현에는 유목 민족의 영향이 컸다. 그들의 유목론은 욕망의 긍정적 측면만 부각한다. 그리고 현대 세계의 비정착적 경험과 이동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미화한다. 그리고 인간과 사회, 자연환경과 지구생태계에 미치는 파국적 결과는 외면한다. 유목주의는 파편화되고 소비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탈주하는 주체가 되기보다 오히려 부추기고 합리화한다.

 

지속 가능한 삶은 국가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소규모의 농촌자립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땅의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복지사회국가주의적 공약은 매우 위험하다. 부유세를 도입하여 가난한 서민에게 교육과 의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교육과 의료가 누구를 위한 체계인데 부자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만 하는 정의가 되는가? 진정으로 서민을 위하는 것은 국가의 조세권 강화를 통해 거둬들인 세금으로 교육과 의료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탈학교, 탈병원의 지역 자치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한다.

 

노인복지도 마찬가지다. 복지제도와 복지시설이 많다고 복지적인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노인 복지시설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은 말이 복지시설이지 격리수용소이고 감금소일 뿐이다. 지난여름에 교황이 방한했을 때 꽃동네를 찾았는데 이런 거대 시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진정한 복지사회는 한 살 어린이로부터 백 살의 호호백발 노인들까지, 건강한 사람에서부터 장애인들까지 서로 격리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상호 부양하며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자치공동체 마을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전통적 복지를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강제로 분리했다. 지금이라도 국가와 시장이 장악한 복지제도를 지역 자치공동체로 되돌려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로 가는 길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자치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가 이를 허용할 리도 없다.

 

선생은 국가중심주의를 철저히 반대한다. 요순시대에 불렀다는 격양가야말로 이상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자면 국가 권력에 불복종하는 주민자치운동, 귀농운동, 유기농과 직거래운동, 농촌과 도시공동체운동 등의 자급자족, 자치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게 선생의 주장이다. 선생이 관여하고 있는 한살림운동도 그런 차원의 활동일 것이다. 골고루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선생의 농촌자치공동체는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번영과 성장 지향의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향이다. 문명의 붕괴를 겪고 나서야 이미 뒤늦었음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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