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룬 책인데 시종 미소를 띠며 읽힌다. 구성도 특이하다. 나이별로 인체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제시되는 사이에 저자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에세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나이듬과 죽음에 대한 여러 경구들이 인용되고 있다. 셋이 어긋나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룬다. 저자인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음에 대한 가르침보다도 이런 스타일의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사실과 정서적 느낌을 연결시키면서 개인의 경험을 함께 녹여내는 형식이 마음에 든다. 주제를 잘 골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만큼 명확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죽음에 대해서는 짐짓 외면하다.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숙명 앞에서 무기력하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번식하고 죽어라'는 것이 유전자의 명령이다. 생식 임무를 다하는 순간, 우리는 버려도 좋은 존재가 된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사실을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밝혀준다.
책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는 97세 된 저자의 아버지다. 부자는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빼고는 성격이나 기질 등이 모두 다르다.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나누어지는 인간이 가지는 두 세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단순하고 쾌활하며, 건강하고 장수하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둔다. 속물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저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유한성 앞에서 두 사람은 동일한 연민의 존재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책에는 오래 살기 위한 방법이 나온다. 아버지는 42점 만점에 38점을 받았다고 한다. 재미삼아 나도 항목을 세어 봤더니 19점이 나온다. 장수하기는 아예 그른 것 같다. 체크 항목은 다음과 같다.
적게 먹는다. 살을 뺀다. 시골로 이사한다. 회사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들인다. 휴식하는 법을 배운다. 현재만 생각한다. 자주 웃는다. 자주 음악을 듣는다. 하루에 예닐곱 시간을 잔다. 장수하는 부모와 조부모를 두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수명의 35%는 유전적 요인으로 결정된다). 결혼을 한다. 포옹을 한다. 손을 잡는다. 정기적으로 섹스를 한다. 많은 아이를 낳는다. 어머니와 가깝게 지낸다. 자식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손자들을 돌본다. 교육을 잘 받는다. 뇌를 자극한다. 새로운 일을 배운다.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화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발산한다. 옳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린다. 담배를 안 피운다. 싱겁게 먹는다. 때때로 초콜릿을 먹는다. 과일과 야채와 올리브기름과 생선과 가금류로 구성되는 지중해식 식단을 따른다. 녹차를 마신다. 적포도주를 적당량 마신다. 운동을 한다. 목표를 설정한다. 위험을 감수한다.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정신과 상담을 꺼리지 않는다. 자원봉사를 한다. 공동체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교회에 다닌다. 하나님을 만난다.
가볍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었지만 마지막에는 가슴이 짠해졌다. "결국에는 아버지도 진다. 우리 모두 언젠가 진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육체적으로 볼 때 인간의 최전성기는 다섯 살 무렵이라고 한다. 그 뒤부터는 죽음을 향해 진군할 뿐이다. 후세에 유전자를 전달해주는 것으로 생명체의 임무는 끝났다. 효용 가치가 다한 생명체에게 우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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