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소리를 괴롭히지 말라

샌. 2024. 7. 13. 11:01

위층에는 10년 넘게 올빼미가 산다. 초기보다는 활동량이나 빈도가 줄었지만 한밤중에 들리는 - 밤 11시에서 2시 사이 - 생활 소음은 잠을 못 이루게 하여 괴롭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미리 곯아떨어지는 게 제일이다. 층간소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처하느냐는 오랫동안 내 삶의 화두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를 괴롭히고 짜증나게 만드는 소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어느 스님의 글을 보았다. 스님은 명상을 방해하는 소음을 말하고 있다. 내용 중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명상하면서 나는 나에게 묻곤 한다. "어째서 소음은 나를 어지럽게 만들까?" 밖에서 나는 새소리든 누군가가 기침하든, 넒은 홀 문이 쾅 하고 닫히든 어째서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눈꺼풀을 닫아버리듯 보이지 않는 마개를 찾아내 두 귀를 닫아버릴 수 없는 것일까.

소리를 잘 살펴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고 나자 내가 소리를 들은 단 하나의 이유는 내 마음이 그리로 향해 그것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소리의 세계에 대한 나의 적극적인 관여가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나를 어지럽게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누군가 당신을 돼지나 천치라고 부를 때 그 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런 소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귀담아듣는다. 우리는 소리의 세계에 관여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소리가 그 본성에 따라 나오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염오(厭惡)의 자세를 갖게 된다. 소리에는 듣기 좋은 소리도 있고 미친 소리도 있고 새 소리도 있다. 어떤 새들은 감미로운 소리를 내고 까마귀 같은 새들은 흉측한 소리를 낸다. 까마귀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까마귀 탓이 아니다. 제 속성에 따라 그런 소리를 낼 뿐이다.

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재가수행자들은 까마귀 같고 어떤 재가수행자들은 나이팅게일 같다. 어떤 승려들은 말을 예쁘게 하고, 어떤 승려들은 흉측하게 한다. 그런 소리들은 각자의 속성에거 나올 뿐이다. 그런 소리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염오를 통해 그런 소리들에 관여하지 않을 때 그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고통의 원인이 소멸될 때 고통은 사라져 버린다. 감각의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저절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염오하는 마음과 함께 그것에 관여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에게 퇴짜를 놓을 것이고 우리고 그것을 무시하게 된다. 염오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심오한 말씀이 있다. "소리가 너희를 어지럽게 만드는 게 아니라 너희가 소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소리만이겠는가, 이 글은 세상의 모든 대상을 바라보는 불교적 관점이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이 세상은 단지 내 감각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리가 나를 괴롭히는 원인은 소리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이것이 과연 삶의 난해한 문제를 다루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오뚝이는 아무리 쓰러뜨리려고 해도 다시 일어선다. 현실은 마치 오뚝이 같다. 보통 사람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의 악순환에 빠져들 뿐이다. 층간소음의 경우 내 마음과 싸울 게 아니라 이사를 가는 게 당장은 최선책이다. 하지만 외적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에 놓인 대부분의 상황이 그러하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내가 나를 괴롭힐 게 아니라 과감히 놓아버려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스님은 이를 '염오(厭惡)'라고 표현했다.

 

얼마의 생을 더 살고 살아야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내 눈 앞에서 나를 자극하고 뒤흔드는 현상들을 짐짓 무시하며 관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한밤중이 되면 나는 이웃이 마련한 시험대에 오른다. 그래, 고맙다. 네 마음공부가 어디까지 와 있느냐고 잊지 않고 물어주니까. 하지만 아무리 성찰해 봐도 나는 길들여지고 있지 마음공부가 진일보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은 제자리 뜀박질인 것 같다. 애쓰고 땀 흘리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물들의 세상  (0) 2024.08.21
슬픔의 나무  (0) 2024.08.04
뜻밖의 친절  (0) 2024.07.05
절주의 기준  (0) 2024.06.28
행복이란  (1) 202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