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현관문을 지나 십여 걸음 앞에 작은 초등학생 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곧 엘리베이터가 나올 거고 아이는 먼저 올라갈 터였다. 나는 걸음을 늦추며 천천히 따라갔다. 코너를 돌아가니 웬걸,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에는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안녕하세요"라며 미소까지 짓는 것이었다. 뜻밖의 친절에 내 마음이 환해졌다.
일상에서 이런 친절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친절은 전염성이 있어서 나도 따라하게 된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면 내 기분도 좋아지는 것이다. 어떤 친절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글에서 가슴 뭉클해지는 대목을 봤다. 작가가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수녀가 된 계기를 들은 내용이다.
"전남의 한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요. 큰딸인 나는 학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새로 소개받은 어떤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지요. 거기 사장님께서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서울 시내에 나가 구경을 시켜주시고 밥도 사 주시고 그리고 뜻밖에도 저를 서점에 데려가 책을 사주셨어요. 제에게는 서울이란 온통 고생과 긴장뿐인 도시였는데 아주 뜻밖의 일이었지요. 집에 갈 때가 다 되어서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조심스레 여쭈었어요. '제게 왜 이런 걸...' 하고요. 사장님께서 웃으시며 제게 자신의 지갑을 열어 돈을 보여주며 대답하셨어요.
'누군가 너에게 이런 걸 해주라고 이 돈을 주셨단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말아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그냥 사장님께서 나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시는 소리인 줄만 알았어요. 그래서 대답했죠.
'그런 좋은 분이 계시다니 믿을 수 없네요.'
저는 그냥 웃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말씀이 이어졌죠.
'그 사람이 궁금하니? 만일 그렇다면 그게 어디든 네가 가는 길에 있는 성당에 들어가보거라. 거기 그분이 계시단다.'
그래서 동네 성당에 갔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사장님의 친절이 소녀를 수녀의 길로 이끄는 결정적인 동인이 된 것이다. 잔잔한 미풍 같은 친절이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현대 사회가 삭막해진 것은 이런 친절이나 다정이 사라진 탓이 크다. 이젠 이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한다. '너는 너, 나는 나'의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 옆집이 새로 이사 온 걸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도시의 삶은 이웃간에 서로 모른 채 외면하고 지내라고 부추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감과 연대가 끊어질 때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해진다.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사라진 사회는 사막이나 진배없다. 현대에서 인간성의 위기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친절에 감격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의 온기에 너무 굶주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돈이나 권력이나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이 세상을 살 맛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작은 뜻밖의 친절이나 사소한 다정함일 것이다. 오늘은 엘리베이터 안의 아이가 내 스승이었다. 이런 작은 친절과 다정함이 모여 우리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따스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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