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혹은 열 번에 한 번쯤이라도
꽃이 아니라
꽃잎이 지는 것을 보러 가자
뽐내지 마라
교만하지 말라
죽은 날이 있다는 걸 알라고
떨어지는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내려갈 때가 있다고
떨어질 때가 있다고
잃을 때가 있다고
꽃잎은 지며 그대에게 말하리라
있을 때 잘하라고,
건강할 때 조심하라고,
잃기 전에 베풀라고,
땅에 떨어진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사는 재미가 없을 때는
피는 꽃이 아니라
지는 꽃을 보러 가자
죽음이 언제 그대를 데려갈지 모르니
즐겁게 살고
감사하며 살라고
지는 꽃잎이 그대에게 말하리라
- 지는 꽃을 보러 가자 / 최성현
자연농 농부인 선생은 30대 초반에 귀농해서 30년 이상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청년 시절에 자연농법을 만나 인류가 갇혀 있는 거대한 우물을 보는 경험을 하며 인간 편에서 자연의 편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의 아호는 '개구리'다.
선생은 <녹색평론>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선생이 쓴 <좁쌀 한 알>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등 여러 책을 읽으며 삶의 방향성에 공감했다. 한때는 어줍잖게 나도 자연농 흉내를 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릇이 안 되는지 일찍 손을 들고 말았지만.
올해 나온 책인 <무정설법>에는 선생이 쓴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그중 한 편을 옮겨 본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말 없는 천지만물이 행하는 설법이다. 눈 밝은 사람에게는 자연이 곧 스승이다. 고매한 설법을 들으러 꼭 법당이나 교당으로 찾아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성철 스님은 무정설법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정(無精)이란 무생물이다. 생물은 으례 움직이고 소리도 내니까 설법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무정물인 돌이나 바위, 흙덩이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설법을 하는가 하겠지만, 불교를 바로 알려면 바위가 항상 설법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온 세상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佛事) 안 하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 참으로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눈만 뜨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열린다. 그러면 거기에 서 있는 바위가 항상 설법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정설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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