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65에서 75 사이

샌. 2015. 10. 1. 10:01

9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선생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5세에서 75세 사이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걸 보았다. 오래되어서 선생이 든 이유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 역시 선생의 생각에 찬성한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는 인생의 절정기로 20세와 69세를 들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어느 때를 돌아보아도 그 나이로서의 빛나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빛만 아니라 그늘 또한 존재한다. 청년기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고민과 번뇌의 어두운 밤이 함께 하는 시기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노인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싶지만 노년은 또 그대로의 멋과 재미가 있다. 육체는 쇠락해가지만 정신은 익어가는 감처럼 완숙해지는 시기다. 삶의 경험이 잘 발효된다면 가장 지혜로워지는 때도 노년이다. 철학자인 선생처럼 학문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65세가 되면 대부분 자식을 짝지어 내보낸 나이다. 가족이라는 부담에서 해방되고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다. 일부는 손주 짐을 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므로 논외다. 인생에서 가장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시기가 이때다. 경제적 여유만 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도 그런 취미 생활을 즐긴다.

 

내 경우도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덜한 시기가 지금이다. 무엇보다 의무와 욕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자신의 한계를 아니까 작은 것에 만족한다.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다. 세상살이가 신경 쓸 일의 연속이지만 전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몸은 그런대로 아직 쓸 만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75세까지는 운전 정도는 할 수 있다. 두 발로 어디든 갈 수 있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선생이 65세부터 75세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로 표현한 건 맞는 말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즐기면 된다.

 

돈은 여유 있는 게 좋지만 부족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지갑에 맞는 놀이를 찾으면 된다. 골프를 치고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고 더 행복한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다. 이것만 바탕이 된다면 65세에서 75세 사이는 인생 전반기의 20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75세가 넘으면 삶은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하늘에 맡겨야 한다. 친구도 하나둘 떠나고 외로움이 밀려온다. 질병도 찾아온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아마 반 이상이 외출하는데 지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은 있다. 활기까지는 아니어도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복은 없다.

 

65세에서 75세 사이, 90년을 넘게 산 김형석 선생이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한 말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황금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걸 향유할 사람이 되느냐의 여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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