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흥미롭다. 10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때이므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 시절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면서 공감한다.
<양철북>은 이산하 시인의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꿈인 고등학생 철북이 구도승인 법운스님과 전국을 순례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배운다. 구체적인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함께 지내고 얘기하며 자연스레 눈을 떠간다.
소설에서 철북이 스님과 나누는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고등학생의 지적 수준은 이미 뛰어넘었다. 작가를 꿈꾸는 소년의 엄청난 독서량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늘 선문답 같은 말이 오간다. 둘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부 맑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내 경우 고등학생 때는 입시에만 매몰되어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학교 공부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건 아예 생각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진리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갈구는 지적 방황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갈망이 화산처럼 분출하는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성인이 되면 제가 무엇을 찾는지조차 잊어버린다. 하루하루 허덕이다 보면 내가 뭣 때문에 살지, 라고 회의에 잠긴다. 자신의 지향점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성장소설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좋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반짝이던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음을 감사한다. 소설은 법운스님이 철북에게 준 편지로 끝난다. 스님은 혈사경을 통한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며 이렇게 당부한다.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정의로운 창이 되고
구부리면 밭을 일구는 호미가 되고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고
지난 세월 붙잡아 나이테를 남기지 않고
안을 비워 더욱 단단해지는 대나무처럼
네 몸과 마음을 항상 걸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네가 어디에 있든 작고 낮고 가볍게
그리고 느린 것들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며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거라.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요, 작가가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