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삶은 홀수다

샌. 2016. 9. 23. 16:16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이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 시사성이 짙은 내용이 많다. 글마다 후기가 붙어 있는 게 특이하다. 현재 시점에서 본인의 느낌을 재정리했는데, 작가의 글에 대한 책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인간적 특징은 산문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의 일상이나 관심사, 가치관이 직설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에 대한 내적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므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문을 읽는 것이 필수다. 김별아 작가의 인간적 매력도 이 산문집을 통해 넉넉히 확인할 수 있다.

 

<삶은 홀수다>에서는 반짝이는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소설가라 어휘력이 풍부한 건 당연하겠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우리말이 문장을 더 빛나게 한다. 새로운 단어를 여럿 알게 되었다. 써먹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책머리에 쓴 작가의 말 제목이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이다. 사전에는 '어섯눈'이 '사물의 한 부분 정도를 볼 수 있는 눈이라는 뜻으로, 지적 활동의 능력이 생겨 사물을 보고 차차 이해하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또한 처음 만난 말이다. '어섯눈뜨다'는 '사물을 대강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글 중에서 책 제목으로 사용된 '삶은 홀수다'를 옮겨본다.

 

계집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귓볼에 입술이 닿을 듯 바싹 다가앉아 속닥거린다. 시시풍덩한 얘기에도 배를 잡고 뒹굴며 웃고, 화장실에 갈 때조차 서로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몰려나간다. 사내아이들이 힘의 강약에 따라 서열을 만드는 것과 대비되어, 계집아이들은 무리를 짓고 단짝을 찾는다.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며 자기들끼리만 아는 비밀을 주고받는다.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겠노라고 손가락 도장을 꾹꾹 눌러 찍는다.

무리를 둘러싼 벽은 단단해 보였다. 아무래도 쉽게 넘나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그 무리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선생님도 없고, 선물 가게와 옷 가게를 드나드는 일에는 흥미가 없고, 분식집에서 죽치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일에도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어둡고 소심한 나 자신이 싫기도 했지만 무리에 속하기 위해 나를 버리고 바꿀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혼자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혼자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라는 사실을 꺼려하며 무리의 주변을 맴돌며 기웃거리거나 비굴한 웃음을 흘리지 않는다. 독일의 심리상담가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의 말을 삶 속에서 깨우치게 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리를 짓는 일에 열심이다. 모임을 만들고, 시시때때로 연락을 하고, 시간을 쪼개어 약속을 잡는다. 휴대폰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우울해지고 나만 빼놓고 저희들끼리 만나고 있을까 봐 걱정을 한다.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으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볼까봐 차라리 굶기를 택하고, 결혼사진을 찍을 때 배경이 되어줄 친구들이 없는 게 부끄러워 대행서비스를 통해 하객을 사기도 한다. 인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요, 사회생활에서는 인간관계가 곧 재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런 이들은 '홀로 있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자유로운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혼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기쁨과 그것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삶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동행 없이 홀로 산책을 하면 남의 보폭에 나를 맞출 필요가 없다. 쇼핑을 할 때 혼자라면 타인의 취향을 강요당할 염려가 없으니 유행보가 개성을 따를 수 있다. 아직까지 혼자 뷔페에 가거나 고깃집에서 삼겹살 2인분을 당당히 구워 먹고 나온 적은 없지만, 홀로 기차를 기다리며 역전 재래시장의 식당에서 순댓국을 안주 삼아 소주 반병에 얼근히 취했던 기억은 내가 경험한 어떤 여행의 추억보다 멋진 것이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사랑하기보다는 지나친 포만감을 경계하며 그리움의 공복을 즐기는 편이 낫다. 무릇 성숙한 인간관계란 서로에게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주고픈 만큼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깜냥껏 배풀면 그만이다. 그러니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없어도 서운하거나 불안치 않다. 진정한 믿음과 이해는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보고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 전달된다.

삶은 어차피 홀수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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