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샌. 2016. 9. 17. 12:00

지은이인 이명현 선생은 전파천문학을 전공한 연세대 교수님이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쉽고 흥미롭게 우주를 소개하고 있다. 밤하늘을 사랑하는 선생의 열정이 글에 녹아 있다.

 

소개에 보면 선생은 어린 시절에 이미 별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외국의 천문잡지를 구독했고,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도 꾸준히 썼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천문학도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칼 세이건을 존경한다는 데, 한국의 칼 세이건이 될 소질이 충분히 갖추어진 것 같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글을 봐도 그 실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별에 꽂혔던 내 옛날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밤하늘의 별이 뇌리에 새겨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커서는 군대 가서 밤 보초를 설 때 깜깜한 밤하늘에 모래알처럼 덮인 별을 쳐다보는 게 낙이었다. 그때만큼 별을 가까이 한 적도 없었다. 힘들었던 군대 생활을 견디게 한 힘도 별이었다. 별에 대한 동경이 뒤에 천문학 공부로 구체화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당시에 동아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폴로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하며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웠다. 인간의 달 착륙은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전공을 천문학으로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시에 천문기상학과를 간다고 하면 모두가 말렸다. 아마 용기를 내어 그 길로 갔다면 내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짧은 지식이나마 아이들에게 우주를 가르치면서 밤하늘에는 꾸준히 관심이 있었다. 망원경으로 토성의 고리를 처음 보았을 때, 쌍안경 가득 안드로메다은하가 나타났을 때, 76년 만에 찾아온 핼리혜성을 사진 찍었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느껴진다. 특별한 천문 현상이 예고되면 카메라를 들고 근교로 자주 나갔다. 밤을 새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젊었을 때의 일이다.

 

앞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개기일식과 오로라다. 우리나라에서는 2035년 9월 2일에 개기일식이 예보되어 있다. 19년 뒤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소원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를 보자면 외국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올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메시에 마라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8세기 후반에 메시에는 흐릿하게 빛나는 천체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오늘날에는 은하, 성운, 성단으로 알려진 천체들이다. M1부터 M110까지 이름이 붙은 110개의 천체 목록으로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는 단골 관측 대상이다. 단 하룻밤 동안에 이 메시에 천체를 모두 관측하는 것이 '메시에 마라톤'이다. 하루가 아니라 한 해 동안이라도 이 마라톤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러자면 천체망원경 하나는 장만해야 한다. 그럴 열정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은 별에 대한 꿈을 새록새록 일깨워준 책이다. 지은이는 우주를 이렇게 정의했는데 참으로 깔끔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양자역학적 에너지 벽 속에서 양자요동을 치던 음과 양의 에너지들이 우연과 필연을 머금고 무심히 그 벽 밖으로 나와 만들어놓은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0) 2016.10.02
삶은 홀수다  (0) 2016.09.23
서프러제트  (0) 2016.09.10
춘추전국 이야기  (0) 2016.09.04
스타트렉 비욘드  (0) 201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