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폭풍의 날

샌. 2017. 3. 21. 12:17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별로 일을 만들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가끔 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다.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와서는 일상을 휘저어놓는다. 며칠 내에 잠잠해지기도 하지만 여파가 오래 가기도 한다. 인생길 곳곳에 지뢰를 숨겨둔 신은 심술궂다.

 

10년 전에 끊은 담배 한 갑을 태웠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담배 생각이 저절로 났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중간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데 담배의 공이 컸다. 담배와 알코올에 있는 심리적 위안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일은 돌이켜 보니 내 인과응보인 측면도 있다. 일을 명확히 처리하지 못하는 습성이 한몫을 했다. 마찰이 두려워서 무마한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내부에서 증폭되면 도리어 더 큰 화근이 된다. 인과응보는 도망갈 수 없는 인생의 법칙이라는 걸 배웠다. 특히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인격의 틀은 깨트리기가 너무 어렵다.

 

참 이상하다. 나이가 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타인에 대해서도 관대해질 것 같은데 반대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만 보이는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다. 편협한 제 생각에만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헛살았다는 자조감에 빠진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충돌이 쓸데없는 갈등을 낳는다. 타인의 시각을 조금만 인정해도 세상은 훨씬 차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폭풍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한바탕 혼란에 빠지지만 그 뒤에는 새로운 질서을 만들어낸다. 많은 피해를 주는 여름 태풍도 자연 생태계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고 한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폭풍에도 그런 의미가 있으리라고 유추해 본다. 그러면 상당한 위로가 된다.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만약 일이 잘못된 길로 갔다면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을 것이다. 동분서주 뛴 결과 완전하진 않지만 일정 부분 수습이 되어 다행이다. 공은 이제 내 손에서 떠났다.

 

인생은 소란하고 시끄럽다. 조용하고 평안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포기해야 여유가 생긴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 제 생긴 대로 살아갈 뿐이고, 나도 그 가운데 묻혀 흘러갈 뿐이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탓이오  (0) 2017.04.15
세계행복지수  (0) 2017.03.24
그런 일이 있은 뒤  (0) 2017.01.21
행복불감증  (0) 2017.01.03
자괴감  (0) 20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