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 三年不出 爲其妻찬 食豕如食人 於事無與親 雕琢復朴 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是終
"그런 일이 있은 뒤, 열자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 참된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3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으며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하며, 세상 일에 좋고 싫음이 없어졌다. 허식을 깎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무심히 독립해 있으면서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거기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이와 같이 하여 일생을 마쳤다."
<장자> '응제왕' 편에 나오는 구절로, 처음 <장자>를 읽었을 때 매우 감명을 받은 부분이다. 고상한 철학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삶과 직결되는 내용이 좋았다.
열자에게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열자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열자가 머리로 하는 공부의 한계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한 일 세 가지가 나온다. 열자는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첫째,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다. 요즈음 세상이 아닌 2천여 년 전 이야기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사내가 부엌에 출입하는 일은 수치로 여겼다. 가부장제가 확고했던 그 시대에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둘째,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했다. 가축과 사람의 구별이 사라졌다. 대상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하물며 사람 사이에는 말 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셋째, 세상 일에 좋고 싫음이 없어졌다. 분별심이 없어지고 본연의 허심(虛心)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 정도가 되면 완전한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아(我)와 타(他)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깨달음이다. 천 권의 책을 읽은들 내 꼬라지가 하나도 변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변화가 없으면 가짜 깨달음이다. 물론 열자 같은 충격적인 경험을 우리가 하기는 힘들다. 고작 열자의 흉내를 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의도적인 행위는 찌꺼기를 남긴다. 마음에 쌓인 앙금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수십 년 간의 누습이 끊임없이 제동을 건다. 열자 이야기를 읽었을 그때 아내를 위해 단 한 끼나마 밥을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행위는 늘 보상을 바란다. 돈오(頓悟)가 없으면 항상 쳇바퀴 돌기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열자의 체험에 대해서는 <장자>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한 순간에 근원을 깨닫는 궁극적 체험이었다. 머리로 하는 공부로는 이를 수 없는 존재의 실상을 열자는 대면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모든 것이 변했다.
나를 옭아매는 틀이 답답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족쇄처럼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붕(鵬)이 되어 훨훨 허공을 날고 싶다. 그러나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 아집의 벽은 너무나 강고하다. 그런 날, 열자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허식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갔다는, 무심히 홀로 있으면서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얽매이지 않았다는, 열자를 망연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