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행복불감증

샌. 2017. 1. 3. 11:04

연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이 되느냐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행복은 타고난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 좌우된다. 같은 조건에서 비관파보다는 낙관파가 훨씬 더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행복유전자가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분류하자면 비관파에 속한다. 한 예로, 바둑을 둘 때는 형세 판단을 하게 된다.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알아야 작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하면 안전하게 마무리하려 할 것이고, 불리하면 무리가 되더라도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그런데 내 경우는 집이 많은데도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잦다.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판을 그르친다. 바둑만이 아니라 삶의 곳곳에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둘을 초월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전자가 훨씬 행복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고뇌를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별로 없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세상을 밝게 산다. 그런 사람이 부럽다. 닮으려고 해도 안 된다. 나는 행복유전자가 부족하다. 그래서 더욱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머리를 굴린다고 구해지지 않는다. 삶을 즐길 줄 아는 것도 천부적인 능력에 속한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행복불감증 환자도 나름대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은 마음의 평화다. 마음의 평화는 만족에서 나온다. 반대로 불행은 불만족의 결과다. 겉으로는 불평과 짜증으로 표현된다. 대부분 기대치가 높거나 의무감의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본다면 비관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나는 걸을 때와 혼자 있을 때 제일 평안을 느낀다. 가능하면 이 둘의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대신에 불편하게 하는 자리는 피한다. 번거로운 것은 제일 질색이다. 이제 다른 사람 눈치 봐야 할 나이는 지나갔다. 나 자신의 행복을 찾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밖에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얼마간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행복이 인생 최고의 목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살았어도 의미 있는 인생이 있다. 일신의 행복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족적이 역사에 뚜렷이 남아 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의미를 추구하는 것도 더 큰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행복에 대한 표준적인 잣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무시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름대로 행복을 즐길 능력이 주어져 있다. 낙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사람대로, 비관적인 사람은 비관적인 사람대로 제 몫의 행복이 있는 것이다. 너무 행복을 외치니까 도리어 행복이 달아나는 것은 아닐까. 행복불감증 환자의 변명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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