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모르고 지낼 권리

샌. 2016. 11. 18. 11:35

주민끼리 인사를 금지하는 규칙을 정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그것도 일본의 아파트 단지에서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게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친절하며 인사성 밝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 더욱 그랬다.

 

이 아파트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이웃과 마주칠 때 인사를 나누고 있나?"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매번 인사한다"고 답한 사람은 22%, "가끔 인사한다"는 50%, "거의 하지 않는다"는 28%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마 더 심할 것이다.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는 가끔 목례를 하지만,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파트 생활의 장점으로 익명성을 든다. 서로를 알 필요가 없고, 각자의 생활에 간섭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동네나 이웃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졌다. 그것이 도시의 비정함일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편안함을 느끼는 요소가 된다. 이런 아파트 문화에 공동체적 훈기를 도입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직접 대면할 때 신경 써야 할 체면이나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모르는 타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일본의 경우처럼 앞으로는 인사받는 것도 부담스럽게 여길지 모른다.

 

미래 사회는 이런 고립형 인간들로 채워질지 모른다. 각자 모래알처럼 존재하며 관계는 사이버상에서 맺는다. 더 나아가면 경험조차 가상현실에 의지할지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미래의 신인류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다. 가족마저 해체되는 시대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뭔가 아쉬운 게 있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수백만 년을 살아왔다. 야생에서 홀로 된다는 것은 원시인에게는 죽음을 의미했다. 특히 우리는 정(情)에 기반을 둔 공동체다. 고생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그때가 행복했다고 말하는 건 사람들 간의 따스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현대인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미 추는 개인으로 기울었다. 현대 문명이 이런 경향을 주도하며 가속화시키고 있다. 모르고 지낼 권리를 주장하지만 고립된 인간은 더욱 외로운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강제로 떼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문명의 폭력성이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여러 시도는 대부분 좌절되고 있다. 이젠 '모르고 지낼 권리'를 과감히 주장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급변하는 세상을 실감한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의 차원이 아니다. 짧은 기사 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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