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철학자로 정이(1033~1107)란 분이 있다. 중국 성리학의 기초을 놓은 분이라는데, 후세에 남긴 잘 알려진 글이 있다.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少年登科 席父兄弟之勢 有高才能文章 人生三不幸
소년 시절에 과거급제하고, 부모 형제의 권세가 대단하고, 재주와 문장이 뛰어난 것, 이것이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이다.
삶의 늘그막이 되어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아마 젊은이는 공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금수저로 태어나느냐, 흙수저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이 거반 결정되어 버리는 요즈음 같은 시대는 더욱 그렇다. 아마 정이가 살았던 송나라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남긴 것이리라.
정이는 왜 이 세 가지를 불행이라고 했을까? 사람이 자신의 분수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리라. 총명하고 일찍 출세한 사람 중에 겸손한 이를 찾기는 힘들다. 대부분 제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안다. 제대로 된 인생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 너무 순탄대로를 걸으면 힘든 이웃이 보이지 않는다.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위세로 호의호식할지는 몰라도 고난과 역경이 가르쳐주는 지혜는 얻지 못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걸 잃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원리다. 정이가 중시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다움'이라는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고 흙수저로 태어난 것이 행복이라는 뜻은 아니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그것은 행불행의 조건이 안 된다. 행불행은 자신의 처지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에서 생겨난다. 금수저도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고, 흙수저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살다 보면 금수저 흙수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인생을 무늬 짓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 웃는 사람이 내일 울게 되고, 오늘 우는 사람은 내일 웃게 된다. 복 속에 화가 숨어 있고, 화 속에 복이 자라고 있다. 발밑만 보지 말고, 멀리 길게 보자. 천 년 전에 정이가 남긴 말의 의미도 이러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