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존엄사를 택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화가인 베치 데이비스(41)는 3년 전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결국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환자의 50% 가량이 3~4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 지인들을 초대한 이별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마침 캘리포니아 의회는 작년에 미국에서 5번째로 의료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삶을 끝내는 선택' 조항이다. 18세 이상의 성인으로, 치명적인 병에 걸려, 남은 삶이 6개월 미만이며, 온전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지구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모험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간 의료진을 통해 존엄사 신청을 마쳤습니다. 7월 24일 해 질 녘에 '재탄생' 의식을 치를 계획입니다. 참석을 원하는 사람은 미리 예약을 해주십시오."
참석을 신청한 사람에게 베치는 다시 '파티'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저의 '재탄생' 기념 파티에 참가하기로 한 모든 분들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저를 환송해주기 위해 기꺼이 모이겠다고 밝혀주신 여러분 모두 정말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규칙은 따로 없습니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오세요. 여러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세요. 춤추고, 폴짝폴짝 뛰고, 소리 지르고, 노래하고, 함께 기도합시다. 하지만 제 앞에선 절대 울지 말아주세요. 그 규칙 하나면 됩니다. 이번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말 울음을 참지 못하겠거든, 따로 마련해 둘 지정석을 이용해주세요. 아니면, 그냥 잠시 한쪽 구석으로 가시든지요. 저는 울어도 됩니다. 루게릭병의 증상 가운데 하나가 웃음과 울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운다면 여러분 때문에 우는 게 아닙니다. 제 신경세포가 망가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웃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여러분 때문일 겁니다."
7월 23일 가족과 친구 30여 명이 캘리포니아주 남부 산악 휴양지 오하이에 자리한 베치의 집으로 모였다. 한 친구는 화려하게 장식한 풍선을 한 아름 들고 왔다. 풍선에는 "재탄생을 축하해"라고 적혀 있었다. 첼로를 들고 온 친구도 있었다. 다른 친구는 하모니카를 준비했다.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었다. 영화를 찍는 친구가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7월 24일 오후 4시께 전채로 멕시코식 타말레를 먹기 시작했다. 베치의 단골 가게에서 주문한 피자가 도착했다. 오후 5시부터는 칵테일 파티였다. 베치가 좋아하는 영국 팝과 인디 록을 들었다. 이어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단편영화 '현실의 꿈'을 함께 봤다. 베치는 미리 아끼는 물건을 모두 꺼내놓았다. "이 물건들을 통해 너희들 곁에 머물고 싶어." 친구들은 쇼핑을 하듯 물건을 골랐다. 가끔씩 자리를 비운 친구도 있었다. 잠시 뒤 돌아온 이들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집 앞 언덕에는 흰색 천막이 쳐져 있었다. 간이침대도 준비돼 있었다. 함께 언덕을 오른 이들이 석양을 바라봤다. 이제 '의식'을 치를 차례다. 베치가 2014년 일본 여행에서 사온 흰색과 파란색 줄무늬로 된 기모노를 입었다.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기 위해 친구들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팬테라는 베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너 오늘 정말 예뻐. 이따가 봐."
6시 45분이 되었다. 도우미가 모르핀과 수면제 등으로 이뤄진 처방약을 내왔다. 동생은 약을 편하게 먹게 해주려고, 코코넛우유에 설탕과 소금을 살짝 섞어줬다. 15분쯤 지나서 베치는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그녀의 몸은 집안으로 옮겨졌다. 친구들은 그녀의 손과 발에 유향과 아로마 오일을 발라줬다.
집 밖으로 나온 친구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 10시 35분 베치의 심장이 멈췄다. 베치의 사인은 '자살'이 아니라 '루게릭병'으로 기록됐다. 그녀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내년 6월 베치의 마흔두 번째 생일에 다시 모여, 그녀의 유해를 함께 뿌려주기로 했다.
베치의 경우는 존엄사 중에서도 안락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약물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1997년에 안락사를 도입한 미국 오리건주를 보면 지금까지 752명이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사망자의 0.2%에 해당하는 수치다. 안락사 허가를 받기도 어렵다. 신청자 6명 가운데 1명 정도만 안락사에 필요한 의료진의 처방을 받는다. 처방받은 3명 중 1명은 약물을 손에 넣고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극히 소수에게만 이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존엄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불치병 환자의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치료를 통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내려질 경우 기계에 의한 치료 중단이 가능해졌다. 안락사에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진일보한 입법이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서는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고통 속에서 생명만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안락사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제한 조건만 잘 갖추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 본인이 원하고 가족들이 동의한다면 베치처럼 웃으며 작별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험한 말년을 보내는 것보다 그게 더 인간적이다.
'가장 존엄한 파티'를 읽으면서 영화 '청원'이 떠올랐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친지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며 마지막 파티를 한다. 현실의 베치나 영화 속 주인공이나 모두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내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웰빙'보다 '웰다잉'에 더 관심이 가니 나도 오래 살긴 했나 보다. 솔직히 지금 가더라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당연히 기계에 의한 연명치료를 나는 거부한다. 중병에 걸려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하늘이 준 수명대로 지내다 가고 싶다. 그러나 고통은 적게, 가능하면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죽음을 맞고 싶다. 그때는 현대 의료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허용되고 있지 않지만 안락사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베치는 마지막 파티를 '재탄생' 의식이라고 불렀다. 보는 관점에 따라 죽음이 그리 두려운 것만도 아니다. 존재의 껍질 중 하나를 벗는 과정일 수도 있다. 가능하면 그 과정이 아름다워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자주 접한다면 죽음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도 바뀔 수 있다. 죽음의 긍정은 생의 긍정과 연결될 수 있기에, 웰다잉은 웰빙과 같은 말이다. 어떤 죽음이냐는 현재 우리의 삶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