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을 즐기니 한 가지 일도 없어
타향의 살림살이 외롭지만은 않네
손님 오면 꽃 아래로 시권을 가져오고
중 떠난 침상 곁엔 염주가 남아 있지
한낮이면 채마밭에 벌이 한창 붕붕대고
따순 바람 보리 이삭 꿩이 서로 부르누나
우연히 다리 위서 이웃 영감 만나
조각배 함께 타고 진탕 마실 약속했네
- 담박 / 정약용
淡泊爲歡一事無
異鄕生理未全孤
客來花下携詩券
僧去牀間落念珠
菜莢日高蜂正沸
麥芒風煖雉相呼
偶然橋上逢隣수
約共扁舟倒百壺
- 淡泊 / 丁若鏞
'담박(淡泊)'이란 말이 좋다. '물 맑을 담(淡)'에 '머무를 박(泊)'이다. '담백함에 머무르다'는 뜻이겠다. 욕심 없고 순박한 마음, 무위(無爲)의 마음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함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꽃 아래서 시를 읽고, 술꾼 이웃 영감을 만나면 술 마실 약속을 한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강진에 갇혀 있던 다산의 자유와 여유가 느껴지는 시다. 몸은 가둘 수 있어도, 정신은 속박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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