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가슴이 멨고 눈물이 흘렀다. 권정생 선생이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서럽고 고달팠던 우리네 백성들 삶의 이야기다. 먼 옛날도 아니다. 불과 100년 전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외할머니가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외할머니의 일생 역시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하나와 다르지 않았다. 청상과부가 된 뒤 새끼와 외손주를 키우느라 어느 곳 하나 뿌리 내리지 못하고 전전하며 사셨다. 그나마 배를 곯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었다.
<한티재 하늘>은 권정생 선생이 쓰신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경북의 안동과 영양 지역이 무대다. 이리저리 짓밟힌 우리 선조들의 서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느낌을 전할 수는 없다. 직접 읽어봐야 한다. 그런데 내용이 완결되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난다. 아마 선생님 말년에 쓴 작품 같다.
분들네, 조석, 정원네, 수동댁, 복남이, 이석, 달옥, 이순이, 장득이, 재득이, 이금이, 강생이, 기태, 실겅이, 귀득이, 달수, 분옥, 동준, 서억, 영분, 은애. <한티재 하늘>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름을 부르면 희미하게 웃을 그들 얼굴이 떠오른다. 미운 사람, 고운 사람 모두 따스하게 껴안아주고 싶다.
그들에게는 행복과 불행을 묻는 것도 사치스럽다. 삶이란 버텨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민중은 길 가운데 자라는 질경이 같다. 밟히고 짓뭉개져도 다시 일어선다. 민중의 힘이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수천 년을 살아왔고, 여기까지 이르렀다.
궁핍과 핍박의 첫째 원인은 제 땅을 갖지 못한 데 있다. 일부 지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대부분은 소작농이다. 이리저리 떼이고 나면 먹고 사는 일조차 어렵다. 쌀 몇 되에 자식을 종으로 팔아넘긴다. 땅의 수확물을 골고루 나눈다면 굶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부의 편중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는 민중의 삶을 이토록 피폐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종살이하던 달옥이를 구하려고 어머니는 얼음에 빠져 죽는다. 달옥이는 도망가면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며 통곡한다. 끝없이 찾아드는 불행에 시들어가는 이순의 삶은 눈물겹다. 그런 지난한 삶의 구렁텅이에서도 동준 같은 지순한 사랑이 있다. 일찍 눈을 떠 귀천의 차별을 없애려 한 참봉댁 며느리 은애도 있다.
역사란 역사책에 적힌 것만이 아니라 이런 민중의 땀과 눈물일 것이다. 영웅들의 서사는 민중의 고통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한태재 하늘>은 그런 민중들의 삶을 드러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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