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이 1984년에 나왔으니 30년이 넘었다. 그 뒤에 TV 드라마로 방영되어 인기를 얻었다. 아마 '몽실 언니'라는 인지도는 드라마 덕분일 것이다. 그 드라마를 꾸준히 본 것 같지는 않고, 까만 치마와 흰 저고리의 몽실이 이미지는 아직 남아 있다.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의 감동이 커서 연이어 <몽실 언니>도 읽어 보았다. 시대의 격랑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우리 민중의 이야기지만 시대 배경이나 주인공의 연령대가 다르다. 무엇보다 <몽실 언니>는 소년소설로 동화에 속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체험한 어른들에게 더 공감을 줄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선생이 <몽실 언니>에서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겠다. 책의 머리말에도 분명히 나온다.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폭력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세상의 구조에 내재된 폭력을 가리킨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이다.
몽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안다. 주인 아주머니의 심부름을 다녀오던 몽실은 쓰레기 더미에서 갓 태어나서 버린 흑인 아이를 발견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더럽다고 발로 차며 침까지 뱉었다. 그런데 몽실은 아기를 치마 속에 감추고 집으로 데려간다. 욕지거리를 해대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여요." 열세 살 아이지만 예수의 마음을 갖고 있다.
전쟁중에 서로 죽고 죽이지만 그래도 선한 사람들이 있다. 몽실이를 도와주는 인민군도 있고, 최씨 집에서는 몽실이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준다.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지탱되는 것은 바로 이런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몽실 언니>는 인간애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책의 결말 부분이 아쉽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30년의 세월을 건너뛴 뒤 급히 이야기를 맺었다. 미결로 끝난 <한티재 하늘>과 비슷하다. 그러나 억지로 꾸며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선생의 체험과 진심이 담긴 소설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크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한티재 하늘>이나 <몽실 언니>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식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를 그려보니 먹먹해졌다. 100년 전, 아니 50년 전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을까. 역사의 모진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수많은 민중의 한과 눈물이 지금 이 세상의 바탕이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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