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면서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 제 생각에 갇히는 일이다. 제 생각에 갇히면 현상을 두루 보지 못하고 옹졸해진다. 최근에 그걸 절감하는 일이 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자잘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였다.
본인은 자신을 잘 모른다.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하는 꼰대는 없다. 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친 나를 봐야 한다. 가까운 배우자나 자식도 나의 좋은 거울이다. 설마 내가 그럴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변명하고 부정하기 바쁘다. 내가 그렇다. 흔쾌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를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 지혜로워지는 게 순리일 것 같다.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사람은 너그러워지는 게 아니라 자꾸만 편협해진다. 오만하고 독단적이다. 우선 나부터 그렇고, 주변을 관찰해 봐도 거의 예외가 없다. 묘한 일이다. 인생 경험의 연륜은 철의 장막으로 변한다. 신의 짓궂은 장난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데 제동을 걸기 위해 내가 외는 주문이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을 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길 때, 나는 이 주문을 외운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다고 마음 바탕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못마땅한 순간은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이 세상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무대라는 사실을 자각하려는 노력이다.
좀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나의 제일 큰 과제다. 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않아야겠다. 타고난 그릇이 작아서 그런지 애써도 잘 안 된다. 세상은 여전히 아니꼽고 못마땅한 것투성이다. 나를 들여다볼수록 아집과 편견의 뿌리가 너무 깊다. 요사이는 주문을 외는 목소리에도 힘이 많이 빠졌다. "그럴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