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난한 꽃 / 서지월

샌. 2018. 9. 23. 09:46

금빛 햇살 나려드는 산모롱이에

산모롱이 양지짝 애기풀밭에

꽃구름 흘러서 개울물 흘러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나그네가 숨이 차서 보고 가다가

동네 처녀 산보 나와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꽃샘바람 불어오는 산고갯길에

고개 들면 수줍은 각시풀밭에

산바람 불어서 솔바람 불어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행상 가는 낮달이 보고 가다가

동네 총각 풀짐 놓고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 가난한 꽃 / 서지월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더 바랄 것이 없으니 자족의 기쁨이다. 누가 봐주든 말든 상관 없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 말한 예수의 뜻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 세상에서는 욕망의 꽃밭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풍요로운 꽃이 되고자 한다. 화려하게 꾸미는 경쟁에 지치면 언젠가는 돌아보게 되리라. 한 송이 가난한 들꽃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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