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샌. 2018. 10. 1. 08:25

가벼운 교통 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미터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아내는 외출할 때 부엌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만약 밖에서 죽었을 때 누군가 집에 들어와 보고 지저분하게 살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단다. 나는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죽고 난 뒤에 팬티 걱정하는 사람보다는 덜 하다고 할까.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누가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도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죽은 뒤 타인의 시선까지 신경 쓰는 오지랖 넓은 종족이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하물며 죽음 뒤의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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