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욕 / 나혜석

샌. 2018. 10. 8. 10:09

아프데 아파

참 아파요 진정

과연 아픕데

푹푹 쑤신다 할까

씨리씨리다 할까

딱딱 걸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나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아니다

 

박박 뼈를 긁는 듯

쫙쫙 살을 찢는 듯

빠짝빠짝 힘줄을 옥죄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도끼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또한 아니다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도 없이 문도 없이

퉁하여 광야 되고

그 안에 있던 물건

쌩쌩 돌아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하게

그리도 곱던 색에

매몰히 씌워 주는

검은 장막 가리우니

이내 작은 몸

공중에 떠 있는 듯

구석에 끼여 있는 듯

침상 아래 눌려 있는 듯

오그라졌다 펴졌다

땀 흘렸다 으스스 추었다

그리도 괴롭던가!

그다지도 아프던가!

 

차라리

펄펄 뛰게 아프거나

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끔벅끔벅 기절하듯 아프거나

했으면

무어라 그다지

10분간에 한 번

5분간에 한 번

금세 목숨이 끊일 듯이나

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 상쾌하며

언제나 아팠는 듯

무어라 그렇게

갖은 양념 가하는지

맛있게도 아파야라

 

어머님 나 죽겠소

여보 그대 나 살려 주오

내 심히 애걸하니

옆에 팔짱끼고 섰던 부군

"참으시오" 하는 말에

"이놈아 듣기 싫다"

내 악 쓰고 통곡하니

이내 몸 어이타가

이다지 되었던고...

 

- 산욕(産褥) / 나혜석

 

 

출산의 고통이 절절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921년 5월에 나혜석이 첫 아이를 낳은 후 병원에서 쓴 시다. 출산 직후 그녀는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다만 서럽고 원통할 따름이었다고 그녀는 '모(母) 된 감상기'에서 썼다. 전형적인 모성 신화와는 다른 고백이다. 이런 솔직함이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도 나혜석은 4남매를 두었다. 여성에게는 산욕을 견디고 잊게 하는 내재적 힘이 있는 모양이다. 남자로서는 경험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천부적 모성(母性)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 인간의 바탕이 부모 자식 사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이기성과 집착을 가리기 위해 사랑이라는 미명이 필요한지 모른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와 벌 / 김수영  (0) 2018.10.21
효도에 / 마광수  (0) 2018.10.14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0) 2018.10.01
가난한 꽃 / 서지월  (0) 2018.09.23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0) 201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