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효도에 / 마광수

샌. 2018. 10. 14. 14:07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엃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 효도에 / 마광수

 

 

천륜(天倫)을 강조하는 건 이 세상에 천륜 관계란 없다는 반증인지 모른다. 가정을 천륜의 올가미로 묶으려는 의도는 딴 데 있는 건 아닐까. 효(孝)와 충(忠)은 지배층에 의해 왜곡되기 쉬운 이데올로기다. 모성(母性)도 마찬가지다. 만약 모성이 있다면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핏줄의 바닥에는 이기성과 집착이 깔려 있다. 사랑과 희생의 허울로 화려하게 장식한 게 모성 신화다.

 

마광수 교수는 너무 솔직하고 당돌해서 시대의 미움을 받았다. 표준과 다르다고 그의 독특한 취향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작품은 효 윤리에 반발해서 27세 때 쓴 시다. 문학이란 기성 도덕에 대한 도전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체제에 곱게 길들어진 사람보다는 이런 이단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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