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한 별들만이 지키는 밤
사랑채에서 마당 건너 뒷간까지는
수많은 귀신들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었다
깊은 밤 혹여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새까만 어둠 속에 득실거리는
더 새까만 귀신들 때문에
창호지를 바른 덧문을 차마 열고 나갈 수 없었다
대청 들보 위에는 성주신 부엌에는 조앙신 변소에는 측간신 그리고 담장 밖에는 외눈 부릅뜬 외발 달린 도깨비들....
숨죽이며 가득 찬 오줌보를 움켜쥐고 참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려
잠든 할아버지를 깨우곤 했다
문틀 위에는 문신이 파수를 서고, 지붕 위에서는 바래기기와귀신이 망을 보고, 어스름밤 골목에서는 달걀귀신이 아이들의 귀갓길을 쫓고, 뒷산 묘지에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이, 더 먼 산에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우리가 사는 곳 가는 곳 어디에나 드글거리던
깜깜했으나 해맑게 흥성대던 그때
그 많던 귀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만 킬로미터 밖 위성사진에서도
밝게 빛나 환하기만 한 밤 풍경을 벗어나
아이와 함께 돌담을 따라 난 고샅길을 걸으며
밤하늘에 뜬 별들을 헤아리는데
내가 받았고 다시 내 아이에게 건네줄
마을 가득했던 몸서리치는 무서움은
눈망울에 가득 찼던 호기심은
그 꿈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 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 곽효환
"내 남편(전두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다." 설사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온 세상에다 대놓고 이렇게 나불대도 되는 걸까. 그쪽에서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탄식만 나온다. 그리고 이 시 제목이 떠올랐다. "그 많던 귀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귀신을 쫓아냈으니까 사람들은 더는 무서워하는 게 없는가 보다. 몽둥이 들었던 놈이 도리어 더 큰소리친다. 토종 귀신을 보내고 서양 귀신을 불러와서는 피 묻은 손 모으고 만세번영 기도를 한다. 어디에나 귀신이 드글거리던 과거를 무지의 시대라 폄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내동댕이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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