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무심천 / 도종환

샌. 2018. 12. 20. 11:07

한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어긋나고 어긋나는 사랑의 매듭

다 풀어 물살에 주고

달맞이꽃 속에서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 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욕심을 다 버린 뒤

저녁 하늘처럼 넓어진 마음 무심이라 하나니

다 비워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 무심천 / 도종환

 

 

육조 혜능이 <금강경>의 이 한 구절로 깨달음을 얻었다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而生其心]." 기러기가 호수 위를 날아가도 호수에는 아무 흔적 남지 않는다. 한 해의 끝이다. 돌아보면 어찌 아쉬움과 회한이 없으랴.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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