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숲속의 은둔자

샌. 2019. 4. 26. 12:13

기이한 은둔자가 있다. 1986년 스무 살이었던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그의 집을 떠나 메인 주로 가다가 돌연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27년 동안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은둔 생활을 하다가 2013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27년간 완벽히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노스 폰드의 은둔자'라 불렀다.

나이트가 숨은 곳은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에 있는 '노스 폰드' 호수에 있는 숲이었다. 호수 둘레로 별장만 산재할 뿐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완전히 자신을 숨길 수 있었다. 그는 바위 사이에 야영지를 만들고 텐트 생활을 27년 동안 했다. 음식을 비롯한 생활 용품은 전부 별장에서 훔쳤다. 별장은 주말에만 사람이 찾아왔고 평일에는 비었다. 나이트는 별장에 사람이 없는 때를 골라 평균 두 주에 한 번씩 바깥나들이를 했다. 은둔 기간 중 총 1천 회가 넘는 절도를 한 셈이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나이트는 결국 체포되었다. 주민들에게 무수한 궁금증을 자아냈던 은둔자가 2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이트의 은둔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숲속의 은둔자>는 나이트의 삶에 호기심을 가진 마이클 핀클 기자가 감옥에서 나이트를 면회하고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의 삶과 생각을 추적한 책이다.

누구에게나 은둔 욕구가 있지만 나이트처럼 완전하게 사라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두 해도 아니고 무려 27년간이나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혼자 있고자 하는 갈망 역시 호르몬의 영향이며 유전적이라고 한다. 인간은 저마다 부모로부터 특정한 사회적 소속 욕구 수준을 물려받는다. '사교성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뇌하수체 펩티드 옥시토신의 수준은 낮고, 애정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는 바소프레신 호르몬 수준이 높으면 대인관계를 덜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나이트는 대인관계의 온도 조절 장치가 절대영도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을 게 틀림없다.

나이트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 타인과의 만남은 대부분 충돌이었다. 그가 목적지도 없이 그냥 숲속으로 걸어들어간 이유였다.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북쪽으로 차를 몰았고, 차가 갈 수 없는 오솔길 끝에서 자동차 열쇠를 중앙 계기판 위에 올려두고 떠났다. 그것이 세상과의 작별이었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많은 은둔자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저항자(protester), 순례자(pilgrim), 추구자(pursuer)다. 저항자들은 떠남의 이유가 세상에 대한 증오인 은둔자들이다. 떠남의 동기로 전쟁을 들기도 하고, 환경 파괴나 범죄, 소비지상주의, 부(富)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은둔 저항자들은 고대 중국에서 매우 존경받았다. 현재 일본에는 약 100만 명가량의 은둔 저항자들이 있다고 한다.

순례자 - 종교적 은둔자 - 는 지금까지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이다. 은둔과 영적 각성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 힌두 철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은둔자로서 완전히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성자가 되는 것, 가족과 물질적인 애착을 전부 끊어버리는 것이 인생의 최종 단계다. 은수자로 불리는 기독교 은둔자들은 교회 외벽에 딸린 어두컴컴한 암자에서 홀로 살았다.

추구자는 현대적인 유형의 은둔자들이다. 저항자들처럼 사회로부터 달아나거나, 순례자들처럼 신에게 의탁하며 살기보다는 예술적 자유, 과학적 통찰력, 깊은 자기 이해를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찾는다. 소로는 내면의 바다를 항해하고 탐구하기 위해 월든으로 갔다. 이들은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고 공통으로 말한다.

나이트는 이 세 경우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떠났을 뿐이다. 그러면서 27년 동안 철저히 자신을 격리하고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 아마 나이트는 최장 기간을 견딘 은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가장 열렬하며 진정한 은둔자였는지 모른다. 그는 27년 동안 지루하거나 외로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혼자 있으면서 가장 즐긴 것이 독서였다. 물론 훔친 책이로였다.

나이트의 정신 건강을 감정한 심리학자들은 나이트에게 야스퍼거장애, 우울증, 분열성인격장애 등의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똑똑하고 수줍음 많은 괴짜 천재들이 야스퍼거장애와 관계있다는 연구가 있다. 우정 쌓기가 어려운 사회성 결여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트는 극단적 경우인지 모른다.

현재 나이트는 감옥에서 출옥한 뒤 가족과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낸다고 한다. 여전히 적응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런 자기 만족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인간은 남들 앞에선 언제나 가면을 쓴다. 심지어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연기를 한다. 그런 걸 도무지 견뎌내지 못하는 나이트 같은 사람도 있다. 나이트가 숲에서 경험한 것은 자아 상실이었는지 모른다. 머튼은 말했다. "진정한 은자는 자기 자신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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