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샌. 2019. 5. 5. 11:10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양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채집,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식물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고, 외국인들 손에 의해 조사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우리 고유 식물 5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를 비롯한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327종이나 된다. 무려 62%에 달한다. 슬픈 역사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식물 이름도 일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 정서와 동떨이진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본말에 더럽혀진 대표적인 경우다. 식민지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만약 우리 식물학자에 의해 주체적으로 명명할 수 있었다면 많은 고유 이름을 되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기만 하다.

 

이윤옥 선생이 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은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식물 이름의 유래를 밝히려는 시도다. 나름의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보니 식물 이름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왜색을 걷어냈으면 좋겠다. 북한이 붙인 식물 이름을 참고해도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통일이 되면 식물 이름에 대한 전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 식물 이름에는 '개'자가 붙은 이름이 많다. 일본말 '이누'를 그대로 따른 것이 대부분으로 별로 어감이 좋지 않다. 북한에서는 '개'를 거의 다 떼어냈다. 개머위는 산머위, 개별꽃은 들별꽃, 개병풍은 골병풍, 개싸리는 들싸리, 개머위는 산머위, 개맥문동은 좀맥문동, 개똥쑥은 잔잎쑥 등이다. 식물 이름에서는 북한이 앞서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쥐똥나무보다는 검정알나무, 버즘나무보다는 방울나무, 귀룽나무보다는 구름나무가 훨씬 부르기도 좋고 느낌도 좋다. 남북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쓰던 한자말을 그대로 쓰는 관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풀꽃의 생김새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일본어를 번역하는 수준이다. "다년생초본이고 지하경은 수염뿌리 모양의 곁가지가 있거나 없다. 전주에 털이 없고 높이는 20~40센티미터다. 근생엽은 길이 10~12센티미터이고 3회 3출엽이며 엽병은 아랫부분이 넓어져서 줄기를 감싼다. 수과는 1~4개가 속생으로 분지하고 편평한 방추형으로 종선이 있으며..."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우리 식물학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등학생이 이해할 용어로 빨리 바꾸어야 한다.

 

광복 70주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 풀꽃에는 일제의 흔적이 무수히 남아 있다. 우리 것을 되찾는 노력이 식물 분야에서는 너무 미진했다. 다소 혼란이 있더라도 빨리 정리해야 할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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