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얼마 전에 타계한 키키 키린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인생 후루츠'는 90세의 슈이치 할아버지와 87세의 히데코 할머니가 전원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쁘고 맛있게 열매가 영글듯 두 분 노년의 삶이 아름답다. 마냥 부럽기만 하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건축가다. 젊었을 때는 국가의 신도시 프로젝트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효율성을 앞세우는 신도시 개발이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슈이치와는 마찰을 일으킨다. 히데코 할머니는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에 할아버지와 철학이 맞는다. 두 분은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그들만의 자연주의 삶을 실천한다.
꽤 넓어보이는 텃밭에는 50종의 과일과 70종의 채소를 키운다. 생명에 기울이는 애정이 나무마다 달린 작은 명찰에 잘 나타나 있다. 새들이 물을 먹으라고 놓아둔 수반에도 '작은 새들의 옹달샘, 와서 마셔요'라고 적었다. 두 분은 감성이 남다른데, 특히 할아버지는 건축가여서인지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좋다. 이웃에게는 그림과 글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누구나 이렇게 늙고 싶을 것이다. 이 정도는 안 되더라도 싸우지나 말고 해로하면 좋겠는데. 두 분한테서 보이는 행복한 부부생활의 비결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절대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데서도 일본인의 특징이 드러난다. 60년을 함께 산다고 모두 따뜻하고 편안하지는 않다. 우리는 역동적인 반면에 삶이 좀 과격한 데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슈이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히데코 할머니만 남는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여일한 할머니의 일상이 계속 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할머니는 할아버지 밥상을 영정 앞에 차린다. 생전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신 음식을 정성들여 장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의 사랑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보여줘서 뭉클했다.
행복한 두 분에게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욕심이 없다는 점이다. 주어진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이유다. 매달 연금이 나오는 안정된 생활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 '인생 후르츠'는 노년의 삶도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반의 반이나마 닮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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