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탄실

샌. 2019. 3. 27. 16:47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전기소설이다. 김별아 작가가 고발하듯 펴냈다. 김명순의 어릴 때 이름이 탄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와 시대와의 불화로 지난한 삶을 한 여인이다. 1세대 여성 문인으로서 나혜석과 닮은 점이 많다.

 

문정희 시인이 쓴 '곡시(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에 그녀의 일생이 잘 그려져 있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에서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당대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지에

소설 '김연실전'을 연재했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비열한 제2의 확인 사살이었다.

이성의 눈을 감은 채, 사내라는 우월감으로

근대 식민지 문단의 남류(男流)들은 죄의식 없이

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

창조, 개벽, 매일신보, 문장, 별건곤, 삼천리, 신여성,

신태양, 폐허, 조광의 필진으로

잔인한 펜을 휘둘러 지면을 채웠다.

염상섭도, 나카니시 이노스케라는 일본 작가도 합세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그들은 책마다 교과서마다

선구와 개척의 자리를 선점했다.

인간의 시선은커녕 편협의 눈 하나 교정하지 못한 채

평론가 팔봉 김기진이 되었고

교과서 편수관, 목사, 소설가 늘봄 전영택이 되었고

어린이 인권을 앞세운 색동회의 소파 방정환이 되었다.

김도인은 가장 큰 활자로 문학사 한가운데 앉았다.

처음 그녀를 불러내어 데이트 강간을 한

일본 육군 소위 이응준은

애국자사의 딸과 결혼하여 친일의 흔적까지 무마하고

대한민국 국방 경비대 창설로,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

훈장과 함께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탄실 김명순은 피투성이 알몸으로 사라졌다.

한국 여성 최초의 소설가,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평론가, 기자,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해방된 조국을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소설 25편, 시 111편, 수필 20편, 희곡 평론 등 170여 편에

보들레르, 애드거 앨런 포를 처음 이 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볏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

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

이제, 이 따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칠십여 년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조선아, 이 사나운 곳아, 이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피로 절규한 그녀의 유언은 오늘도 뉴스에서 튀어나온다.

탄실 김명순! 그녀 떠난 지 얼마인가.

이 땅아! 짐승의 폭력, 미개한 편견과 관습 여전한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아!

 

기생의 딸로 태어난 탄실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차별과 조롱에 시달렸다. 부모가 죽고 가세가 기울면서 그녀는 평생을 가난과 싸워야 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그녀의 재능은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고 만다. 결정적인 장면은 일본 유학 시절에 지인으로부터 당한 강간이었다. 문단에 소문이 나면서 그녀는 바람기 많은 여자로 폄하된다. 여기에 앞장선 대표적인 사람이 김동인이다. 소파 방정환도 그녀의 비난에 가세했다. 여자 홀로 버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설가며, 여자로는 처음으로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그녀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일본 뒷골목에서 행상을 하며 근근이 살다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1896년에 이 땅에 와서 1951년에 떠나갔다. 해방을 맞았지만 돈이 없어 귀국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1924년에 썼던 시 '유언'은 이렇다.

 

세상이여 내가 당신을 떠날 때

개천가에 누었거나 들에 누었거나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하시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하시오.

그러면 나는 세상에 다신 안 오리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별합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초의 여성 소설가였지만 문학 시간에 김명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그녀가 받았던 처우가 어떠했는지 소설 <탄실>이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애처롭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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