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의 부제는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1832년 6월 항쟁을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세상을 보는 자신의 견해를 직접 밝히기도 한다. 당시 프랑스는 왕당파와 공화파의 이념 대결이 치열했다. 마치 지금 우리의 보수와 진보 갈등을 보는 것 같다. 가족 간에도 이념의 차이로 갈라진다. 마리우스와 마리우스 외할아버스 관계가 대표적이다. 공화파의 과격 계열은 혁명을 통해서 세상을 뒤엎으려고 한다.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존재한다."
혼란한 세상에서 고통을 받는 계층은 빈민이다. 소설에서 위고가 제일 연민을 가지는 대상이다. 공평한 분배와 사회 복지 제도의 필요성을 위고는 요구한다. 빈자와 약자에 대한 위고의 관심은 여러 군데에 나온다.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정한 착취를 종식시켜라. 이미 도달한 자에 대한, 가고 있는 중에 있는 자의 부당한 질투를 억제하라. 노동 임금을 수학적으로, 그리고 우애적으로 조정하라. 어린이의 성장에 무상 의무교육을 주고, 학문으로 성년의 기초를 만들어라. 손을 활용하면서도 지능을 계발하라. 강력한 국민임과 동시에 행복한 인간들의 가족이 되라. 소유권을 폐지하지 않고 보편화함으로써 시민 누구나가 예외 없이 소유자가 되도록 소유권을 민주화하라. 부를 분배할 줄을 알라."
"무엇보다도 먼저 불우하고 고통스러운 군중을 생각할 것. 그들의 짐을 덜어 줄 것. 그들에게 공기를 줄 것. 그들에게 빛을 줄 것. 그들을 사랑할 것. 그들에게 너그럽게 지평을 넓혀줄 것. 모든 형태 아래 아낌 없이 교육을 베풀어 줄 것. 근면의 예를 보여주고, 결코 나태의 예를 보이지 말 것. 전체적인 목적의 관념을 증가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짐의 무게를 감소시킬 것. 부(富)를 제한함이 없이 빈(貧)을 제한할 것. 공공의 활동과 민간의 활동의 넓은 영역을 새로 만들어 낼 것. 브리아레오스처럼 약자와 짓밟힌 자들에게 사방에서 내밀어주는 백 개의 손을 가질 것. 모든 사람의 팔에 공장을 열어 주고, 모든 능력에 학교를 열어 주고, 모든 지성에 실험실을 열어 주는 그 위대한 의무에 집단적인 힘을 사용할 것. 임금을 올리고 노고를 줄일 것. 채무와 채권을 균형 잡히게 할 것. 다시 말해서 향락과 노력을 어울리게 할 것. 만족과 요구를 어울리게 할 것. 일언이폐지하여, 고통받는 자들과 무지한 자들을 위해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안락을 사회 기구에서 끌어내게 할 것. 이것이 형제의 의무들 중에서 으뜸가는 것임을 동정심 있는 자들은 잊지 말 것이며, 이것이 정치상 필요한 것들 중에서 으뜸가는 것임을 이기적인 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위고의 이 말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기본 정신이 아닌가 싶다. 현 시대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우리 공동체의 건강 여부가 판가름 난다.
소설 후반부는 샹브리 리 거리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정부군과 대결하는 50명의 청년을 그리고 있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 진압군에 대항하던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군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무리의 지도자인 앙졸라의 웅변이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라는 민중의 노래로 불려진다.
"동지들이여, 미래에는 암흑도 없고, 벼락도 없고, 흉포한 무지도 없고, 피비린내 하는 복수도 없을 것이오. 더 이상 사탄도 없고, 마찬가지로 더 이상 미카엘도 없을 것이오. 미래에는 아무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고, 지상은 빛날 것이고, 인류는 사랑할 것이오. 동지들이여, 언젠가는 올 것입니다. 모든 것이 화합과 조화, 광명, 희열, 생명인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곧 죽으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날을 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