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샌. 2019. 10. 23. 11:37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횟수가 하루에 500~900번 정도다. 가끔 1천 회가 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2천 회를 넘은 날이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다.

 

어떤 검색어로 들어왔는가 봤더니 박노해의 '동그란 길로 가다'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동그란 길로 가다'는 2012년 5월에 블로그에 올렸는데, 하루에만 이 시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이 1천 명을 넘었다. 정경심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 시를 인용하면서 많은 사람이 확인차 내 블로그에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시를 다시 읽어본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오늘 오전 정경심 교수가 구속 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장면을 보았다. 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 정 교수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이며 파렴치범이라거나 가족 범죄단이라고 낙인을 찍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턴다면 내 가족인들 무사하겠는가. 검찰의 칼날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을 상상하면 섬뜩하다.

 

우리 사회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그간 잠잠하던 단톡방에서때를 만난 듯 횡포에 가까운 언설이 난무한다. 일부는 나라가 곧 망하기라도 할 듯 설쳐댄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벌이는 작태치고는 너무 경박하다. 인생의 경륜이 쌓였으면 좀 더 느긋해지고 진중해지자. 나라 걱정 조금 덜 해도 괜찮다.

 

이 시를 인용하며 정 교수는 마지막에 '감사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젠 본인도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관계는 앞으로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었다. 인생에서는 절정의 시간도 짧고, 지옥의 고통도 짧다. 다만 그 어떤 순간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말기를, 이는 정 교수만 아니라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다짐해야 할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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