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힘이 있어야 싸우지

샌. 2019. 11. 11. 10:56

평생을 싸움 한 번 안 하고 살아온 부부도 있다지만 우리는 자주 티격태격한다. 그나마 젊을 때보다는 다투는 빈도나 강도가 줄어들었다. 퇴직을 했으니 얼굴 맞대고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만만 해도 다행이지 싶다. 애정이 없으면 다툴 일도 없지 않은가. 아직 얼굴 쳐다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다.

 

다투는 원인은 주로 내 버럭, 하는 성질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큰소리부터 치니 서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순간적으로 화가 불같이 일어난다.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잠시면 족하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반대다. 꼬리를 내리는 건 늘 내가 먼저다. 화도 잘 내고 용서도 쉽게 구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뒤끝이 없어진 게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감정싸움을 길어져 봐야 피곤하기만 할 뿐이란 걸 잘 안다. 젊었을 때는 서로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말 안 하고 지내는 기간이 한 달 동안 가기도 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버틸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원망과 미움의 독기를 견뎌낼 힘이 없다. 화해하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렇게 말한다.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지, 이젠 안 되겠다."

 

요사이 티격태격하는 단골 소재는 자식과 손주다. 아내는 자식과 손주에게 정성을 다한다. 옆에서 볼 때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인다. 반면에 나는 무관심하자는 주의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된다. 자식과 손주 때문에 내 생활이 지장을 받는 게 싫다. 딸이 옆에 사는 것도 사실 못마땅하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충돌을 일으킨다.

 

그래도 차분하게 대화를 하면 큰소리치며 다툴 일까지는 아닌데, 나는 감정 조절을 못 하고 화부터 낸다. 이놈의 성질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모양이다. 모난 돌은 강물 따라 흐르고 구르면서 둥글어지는데, 세월의 강물조차 인간의 성질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그러니 생긴 대로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행하게도 늙어지니 기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떨어지니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버럭, 화를 내고는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일이 잦다. 이마저도 없어지면 삶이 너무 단조로워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러하니 이 못난 성질마저 애교로 보일 때가 있다. 혹 하늘이 네 천성 바꿔주랴, 물어도 나는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물론 아내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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