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호인보다는 까칠한 사람이 낫다

샌. 2019. 11. 26. 11:10

모든 이들과 두루 사이좋게 지내며 성격이 좋은 사람을 보통 호인(好人)이라고 부른다. 사전에서는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본바탕이나 됨됨이가 좋은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덩치가 있으면서, 서글서글하고 밝은 풍모를 가진 모습이 대체적인 호인의 이미지다. 무슨 일을 당해도 허허 웃으며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저 사람은 호인이야."라고 말할 때는 상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는 그러한 호인의 긍정적인 평가에 딴지를 걸고 싶다.

 

우선, 호인의 특징은 무색무취하며 제 색깔이 없다. 그래서 무골호인(無骨好人)이란 말이 생겼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호인은 대체로 체제 지향적이며 보수적이다. 호인의 철학은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내가 아는 호인 A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 전라도 광주 출신이지만 정치 현안에는 함구한다. 무관심한 건지 내심을 숨지는 건지 도시 알 수 없다. 김대중 선생을 욕해도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과 다툼이나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

 

호인은 대체로 마당발이면서 솔선수범한다. 어려운 친구를 돕고 애경사 참석은 필수다. 모임에서는 총무 역할이 적임이다. 대신에 앞에 나서기를 즐기고 너무 나댄다. 푼수 중에서 호인이 많다. 호인은 제가 없으면 모임이 유지되지 못 할 거라고 착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이용해 먹는지는 모른다. 그런 점에서 호인에게는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호인은 주변을 두루 살필 줄은 알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내적 성찰 역시 마찬가지다. 호인이 종교를 가진다면 의문이나 고민 없이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호인은 자기 생각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억누르며 세상의 가치를 따른다. 호인의 사전에 "No!"는 없다. 호인은 햄릿형이기보다 돈키호테형이다. 사상가나 예술가에게서 호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주변과 불화를 겪는다. 예수는 동네 사람한테 인정을 받지 못했고, 도리어 배척을 받았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여 왕궁을 나오지 않았다면 붓다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현인도 마찬가지다. 세상과의 불편한 관계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한다면 새로움은 잉태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 또는 호인은 칭찬이 아니라 경계의 단어가 되어야 한다.

 

호인보다는 차라리 까칠한 사람이 낫다. 무엇보다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평판이나 시선에 신경을 쓰면 '내 삶'을 살지 못한다. 한 성깔 한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개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죽었다 깨어나도 호인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나를 위한 변명인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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