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감기 불청객

샌. 2019. 11. 18. 13:53

몸이 부실해서 한 해에 두 번은 감기에 걸린다. 주로 가을에서 봄 사이에 찾아온다. 올 초겨울에는 독감에 걸려서 한 달 정도 고생했다. 그 뒤 봄에 또 한 번 감기에 걸렸고, 이번 가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일부러 무리한 일을 피하고 조심하는 데도 불청객은 어김없다.

 

며칠 전 사위와 밖에 나가 당구를 치고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밤거리를 걸은 게 전부였다. 다음 날 기력이 빠진 걸 느꼈지만 설마 감기에게 틈을 보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를 가지고 콜록거린면 세상 사람들은 매일 감기를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아프면 절실히 느낀다. 몸 튼튼한 사람이 제일 부럽다.

 

나는 선천적인 약골이다. 무리하면 어떤 후유증이 오는지 잘 안다. 그래서 조심하는 편인데 모르는 사람들은 엄살을 부린다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은 몸 약한 사람 심정을 헤아리기 힘들다. 누구나 그렇다. 상대 처지가 직접 되어 보지 않고서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나처럼 기(氣)가 약한 사람은 기에 예민해서 그런지 감기(感氣)의 단골손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 참예도 물 건너갔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일상이 무너진다. 감기조차 이러한데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중병이라면 어떠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삶은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시스템에 맡겨진 채 규격화된 치료의 대상이 된다. 살면서 생기지 않길 바라는, 제일 두려운 일이다.

 

그에 비하면 감기는 애교 수준이다. 오히려 고마운 점도 있다. 비실거리는 와중에 내 몸을 관찰해 보면 육체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즉 뒤엉켜진 것이 새로운 질서로 재되는 진통이 아닌가 싶다. 마치 태풍이 바다와 대기를 휘젓고 나면 어지러웠던 생태계가 다시 균형을 잡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이라면 감기는 오히려 몸에 유익할지 모른다. 감기 뒤에 개운해진 몸과 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감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작용이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암 판정을 받은 사람 중 감기를 앓은 비율이 보통 사람에 비해 월등히 낮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실제 내 친구도 암 치료 중에 의사한테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 친구는 감기를 모르고 산 건강 체질이었다. 감기 몸살은 종합적 관점에서는 몸의 유익을 위해 생기는지 모른다. 비정상적인 열 역시 인체에 어떤 효험을 줄 수도 있다. 나쁘게 보이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 몸은 신비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에 찾아오신 감기도 감사하며 함께 지낼 수 있다. 아주 심하지 않다면 일부러 병원까지 찾아가서 항생제니 해열제를 몸에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 열이 나면 그대로 견뎌주는 게 몸에는 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몸의 자연 치유 기능을 믿는 사람이다. 좀 괴로울지라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내 몸을 위해 유익하리라. 이것이 약골의 변명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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