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처음 로또를 사다

샌. 2019. 10. 13. 20:38

시내와 집을 오가는 길에 로또 판매점이 새로 생겼다. 견물생심이라고 선명한 노란 불빛에 끌려 지난주에는 난생처음으로 로또를 샀다. 1만 원을 내니 작은 종이 두 장을 주는데 거기에는 기계가 찍은 10개의 숫자열이 적혀 있었다. 눈에 안 보일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로또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물욕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다.

어제 당첨 숫자 발표가 나왔는데 당연한 결과겠지만 꽝이었다. 3개 번호만 맞으면 되는 5등에도 하나 걸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로또는 45개 숫자에서 6개를 맞히면 1등이다. 5개가 일치하고 보너스 번호를 맞추면 2등, 5개만 일치하면 3등, 4개는 4등(5만 원), 3개는 5등(5천 원)이다. 이런 자세한 내용은 이번에 로또를 사며 처음 알았다.

로또 당첨 확률은 간단한 수학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순전히 수학적 확률로 1등에 당첨될 경우는 약 8백만 분의 1이다. 2등은 130만 분의 1, 3등은 3만5천 분의 1, 4등은 730분의 1, 5등은 45분의 1로 나온다. 매주 1만 원씩 산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5등에 당첨될 수 있겠다.

8백만 분의 1이란 사실 0에 가까운 확률이다. 그런데도 매주 10명 내외의 1등 당첨자가 나온다. 확률을 생각하면 로또를 살 마음이 안 생기지만, 1등 당첨자에 관한 보도를 보면 나라고 안되랴 싶기도 하다. 어쨌든 된 사람에게는 확률 100%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로또 가게 앞을 서성거린다.

몇 년 전에 우리 동네 중국집 배달원이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 뒤로 그 사람 얼굴을 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로또에 당첨되고도 계속 배달원 일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2년 뒤에 나타난 그 사람은 다시 철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사람들의 입방아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다 말아먹고 원위치했다는 등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 사람의 고백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돈 한 번 원 없이 써봤네요. 20억 써버리는데 2년이면 충분하더라구요." 그는 당첨금을 저축하거나 집을 산 것이 아니었다. 럭셔리한 생활과 세계 일주 여행을 하며 호사스럽게 2년을 보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말이다. 특이하면서 멋지게 산 사람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앞으로 딱 한 달만 로또를 사보려 한다. 과연 수학 확률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고도 싶다. 수학 예언대로라면 5천 원짜리에 한 번은 걸릴 것이다. 행운의 5천 원으로 한 번 더 로또를 사고는 완전히 손을 끊어야지. 혹시 모르지. 돼지꿈이나 또는 숫자를 콕 집어 가르켜주는 산신령 꿈을 꾼다면 일어나자마자 로또 가게로 달려갈지 모른다. 내가 만약 1등에 당첨되면 그 돈은 어떻게 쓸까? 중국집 배달원처럼 멋있게 써버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한양 도심에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하려고 바둥거리지나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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