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여드레 만의 외출

샌. 2019. 11. 23. 18:14

 

두 주일이 지나니 그제야 감기가 떠날 채비를 한다. 감기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그냥 집에서 버티는 편이다. 되도록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백수의 좋은 점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주사도 맞고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러나 일이 없어진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저도 지겨워지면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겠지, 하며 느긋하게 기다린다.

 

고향에서 외할머니가 개를 기를 때 보면 개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활동을 멈추고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는다. 음식을 갖다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냥 눈만 끔벅끔벅 할 뿐이다.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 채로 여러 날이 지나간다.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다가도 어느 날 보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생기를 되찾는다. 개한테는 병원도 없고 약도 없다. 자연치유가 되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류도 초기에는 다른 동물과 비슷했을 것이다. 약초를 발견하고 인위적인 처치를 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결국 화려한 현대 의료술로까지 발전했지만 생래적인 몸의 자연치유력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여드레 만에 나선 외출의 행선지는 도서관이었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새 책 두 권을 다시 빌렸다.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과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이다. 처음 만난 책을 배낭에 넣고 돌아설 때는 작가와의 대면에 가슴이 설렌다.

 

걸어서 오가는 길은  어느덧 저무는 가을이 되어 있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으로도 그저 감사한 오후다. 분수 이상의 무엇을 더 욕망할 것인가. 일상이 되면 고마움을 잊어버리지만, 사실 제일 귀한 것은 사소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그 기쁨을 향유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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