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학살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로자라고 하면 지성, 용기와 더불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던 여인으로 떠오른다. "혁명이 전부라고요! 다른 건 다 쓰레기예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이런 말들에 그녀의 생애가 들어 있다.
이 책 <레드 로자(RED ROSA)>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냈다. 만든 이는 영국 만화가인 케이트 에번스다.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로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했지만 무게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에는 주석이 달려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세상을 떠난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이론가이면서 투사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에서 로자를 넘어설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로자의 활동 무대는 독일이었다. 1898년에 베른슈타인과의 '수정주의 논쟁'으로 이름을 알리며 투쟁을 시작했다. 여성, 유대계 폴란드인, 장애인 등 여러 비주류의 조건에서 그녀는 고집스레 자기 길을 밀고 나갔다.
로자의 신념과 달리 현실 사회주의는 거의 소멸하고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만든 자본주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의 예언은 틀렸다. 사회주의 혁명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도리어 독재와 탄압의 온상이 된 결과를 로자가 봤다면 어떤 비판을 하며 새로운 길을 제시했을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외침이 공허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쟁과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속성의 결과로 우리는 비인간화, 반생태의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로자의 경고를 되새겨봐야 할 이유다.
로자의 마지막 날은 가슴을 처연하게 한다. 신념의 옳고 그르냐를 떠나 하나의 푯대를 향해 전 생애를 투신한 뜨거움에 울컥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으며 속물인가. 로자의 강렬한 이미지 뒤에는 섬세한 여성으로서의 감성도 있었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평범한 여자가 되길 바라는 소망도 간절했다. 로자의 첫사랑이었던 레오 역시 몇 달 뒤 그녀의 뒤를 따랐다.
<레드 로자>를 읽으면서 로자가 명문장가임을 확인했다. 그녀의 글은 힘이 있으며 심장을 뛰게 한다. 혁명가로 타고난 사람 같다. 로자는 죽기 전날 밤에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를 마지막 글을 썼다.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베를린에 진입한 군대는 혁명군을 사살하고, 로자는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쓰라린 심정으로 보았다.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도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질서가 베를린을 지배한다!' 이 멍청한 무리들아! 당신들이 말하는 '질서'는 모래 위에 쌓아올린 것이다. 혁명은 또 다시 일어나 싸울 것이며, 승리의 노래에 맞춰 이렇게 선포할 테니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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